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 Smoking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내가 널 사랑했던 파리도 있는 터라 제목에 혹했다. 원제는 <Paris Trance>.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에서 암스테르담 편 ‘트랜스’를 재미있게 읽었던 제프 다이어이기도 했다. 사진과 음악 이야기 및 여행기를 쓰는 에세이스트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엔 소설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에서 나는 젊음을 소진하는 한 방식을 읽는다. 파리는 아마 그러기에 적합한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젊은 네 사람, 두 커플을 중심으로 하는 한 때의 이야기. 사람들이 보통 ‘행복’이라고 부를 순간이겠고,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덧없음이기도 하겠다. 오르가슴이나 트랜스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한순간에 지나지 않기에 특별한 것처럼. 작가는 붙잡아 두고 싶었나 보다, 나누고 싶기도 했을 거다. 전작들이 음악과 사진, 여행 에세이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게, 기억을 계속 얘기하고 있는 듯도 하다.


과거의 일은 그 어떤 것도 가치가 없다. 행복을 쌓아둘 수는 없다. 과거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걸 생각하며 살 수는 있지만, 그 안에 살 수는 없다. 한때 친구와 같은 차에 나란히 앉아서 극장 이름과 영화 제목 맞추기 놀이는 했다는 것,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어떤 마을의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 (252)


반어법임을 안다. 저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도. 과거 ‘안에’ 사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는 지금 청와대의 누군가가 아주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2016년에 1970년대를 살 수는 없는 법이고 살고자 하다가는 지금 이 사단이 난다. 과거 안에 살 수 없기에 현재의 내게 힘이 되거나 회환이 되어, 그러니까 소중한 원동력이 되어 내 미래를 만드는 것 아니겠나.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어떤 마을의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는 것’ 안에 내가 계속 존재할 수 없는 건, 그게 이미 나이기 때문일 거다. 차곡차곡 과거가 되어가고 있는 내 일상들 중 도드라진 기억으로 자리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저 ‘점심 기억’들을 만나는 것이리라.


다이어의 점심 기억에서 연상된 내 점심 기억 하나. 너와 도빌에 가던 길. 렌트한 작은 차(‘brume 색깔 차를 찾아 타시면 됩니다.’ ‘brume이 어떤 색이지? 아, 저거인가 보다.’ ‘말 그대로 안개색깔이네.’)에 나란히 앉아 국도를 달리다가 한적한 마을에 잠시 들렀던 기억이 내게는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거, 너는 알는지. 그래야만 할 어떤 법칙처럼 큰 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약간 떨어진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놀랍게 고요했고.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는 듯. 우물물을 떠서 손을 씻었을 뿐인데, 어떤 도움? 아마도 아름다움. 평생 힘이 될. 내게 ‘아름다움’이란 것의 기준이 되고 있는 그 기억이 네게도 도움이 됐으면. 당신이 누구든, 나를 만난다는 것은 내 이 점심 기억을 만나는 것임을.


당시 영화감독 회고전의 영향이지 싶은데, 파리에서 유행했던 이름이 카사베츠에 이어 안토니오니였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내가 지냈던 파리와 시절이  비슷한 것도 같은데, 이상하게 예스러운 느낌은 뭔지? 취기, 황홀감, 소진하는 젊음 등등은 이미 무라카미 류가 다 얘기했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제 철을 놓친 늙은 히피 같은 작품이랄까. 내가 파리에서 사랑했던 너는 안녕하시길. 번역 제목이 퍽 멋지다는 생각으로 너도 손에 들었을 것만 같은, 제프 다이어의 점심 기억, 젊은 파리다.




덧글

  • 2016/11/29 00:42 # 삭제 답글

    번역 제목 너무 좋네요 진짜! 리뷰도 아름답고 ㅎㅎ 개인의 경험이 책과 섞여서 더 좋은 듯 해요. 거기에 내 경험도 다 뒤섞여서 상념에 젖게 만드네요. 아 파리.. 나의 지난 연인이 우리가 지나쳐가며 남긴 추억을 갖고 살아가는 곳. 이젠 말할 수 있다! 파리 좋아요!! 정작 갔을 땐 좋은지 몰랐지만요 ㅋㅋ
  • 취한배 2016/11/29 15:53 #

    취해서 적어놓고 다음날 보면 늘 후회해요.ㅜㅜ 근데 포 님이 잘 읽어주셔서 고맙지 뭡니꽈.ㅎㅎ 피상적으로 '낭만적인' 파리는 적어도 제게 없는데, 얘기하다보면 낭만 맞네? 싶어지는 거 있죠. 포 님 지금 계시는 곳이 나중엔 제게 파리 같은 역할을 할 것 같아요. 원없이 즐겨주시길.
    건배합시다, 파리와 pp를 위해! (응?)ㅎㅎㅎㅎ
  • 달을향한사다리 2016/11/30 11:43 # 답글

    책 표지도 아름답고, 리뷰도 표지만큼 반짝반짝하네요... 제프 다이어의 다른 책(<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은 그냥그랬는데, 이 책 한 번 더 읽어볼까요? 제프 다이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ㅎㅎㅎ
  • 취한배 2016/12/01 22:06 #

    제프 다이어의 다른 책들이 그냥 그랬다면 이 책도 굳이 추천하고 싶진 않네요.ㅜㅜ 전 <지속의 순간들>이 참 좋았는데 이 소설은 좀 와 닿지가 않더라고요...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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