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초 아가씨 Smoking

식초 아가씨 - 8점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현대문학


원제 Vinegar Girl. 꿀과 대비되는 물질로 식초를 얘기하는가 보다. 나긋나긋, 부드러우며 달콤하지 않고 신, 신랄한, 톡 쏘는, 정도 될까. 개성 있고 생활력 강한 ‘꺽다리’ 여인으로 다시 온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케이트다. 우리말 말괄량이로 옮겨진 원어는 ‘shrew’인 모양인데 원저에 대한 오마주로 한 번 등장하는 그 단어는 ‘뒤쥐’라는 의미로 와서, 피식 웃었다. 깜찍한 숨은그림찾기 마냥, 각주로 달아주지 않았으면 찾아내지도 못했을 shrew.


좌충우돌여인결혼대작전, 어쨌거나결혼, 이라는 큰 틀 속에서도 케이트는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 고장 난 물건이나 처분해야할 골칫덩이 취급되던 셰익스피어의 케이트는 잊어도, 읽지 않아도 좋을 성 싶다. 체면 차리며 고상한 듯 ‘사랑만으로 결혼했어요’라고 할 이들이 아직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결혼제도에도 ‘효용’이 있음을,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그 허울 좋은 결혼이 아닐 수 있음을, 나는 읽었다. 연륜의 앤 타일러, 가족과 결혼 이야기의 대가.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는 4백 년을 기다려 주인을 제대로 만났다.


그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잠깐만요! 내가 이 이상의 가치는 있는 사람이 아닌가요? 난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고요!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나를 보석으로 봐줄 사람과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자격이 있다고요. 꽃과 손으로 쓴 시와 드림캐처를 선물해 줄 누군가와.’
하지만 케이트는 입을 다물고 그릇에 담긴 아이스크림만 휘휘 저었다. (209)




덧글

  • 다락방 2016/11/10 16:02 # 삭제 답글

    아니, 앤 타일러의 소설 중에 저런 게 있단 말입니까? 당장 검색하겠어요.

    인용해주신 문장을 읽으니, '로렌스'의 단편 <목사의 딸들>중에서 둘째 딸의 독백이 생각나요. 언니의 결혼을 보며 너무 실망해서, 자신은 반드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에요.


    "그들은 틀렸어-모두 틀렸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 때문에 자기 영혼을 갉아먹은 거야. 그들한테는 어디에도 손톱만큼의 사랑도 없어. 하지만 난 사랑을 차지할 거야. 그들은 우리가 사랑을 부정하기를 바라고 있어. 자기들은 한번도 사랑을 찾아내질 못했으니까 사랑이란 건 없다고 말하고 싶지. 하지만 난 사랑을 차지하고 말 거야. 난 사랑할거야- 이건 내가 타고난 권리야. 난 내가 결혼한 사람을 사랑할 거야-내게 중요한 것 이것뿐이야." (p.88)
  • 취한배 2016/11/10 23:43 #

    호가스 셰익스피어 프로젝트에서 앤 타일러가 맡은 작품이 <말괄량이 길들이기>. 타일러 자신은 (그리고 아마 저도) 가장 싫어하는 희곡이라는데, <말괄량이>보다 백만 배는 더 재미있는 소설이 되어버렸어요.
    옮겨주신 대사는 어쩜, 케이트의 동생 것 같기도 하네요! <목사의 딸들>은 다락방 님이 아주 어렵게 책을 구했었다는 일화도 기억나고...ㅋㅋ
  • 달을향한사다리 2016/11/10 18:12 # 답글

    요 시리즈 다 괜찮은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 뭐 그런 거죠? ^^ 역시나 언제 읽게 될 지도 모르면서 위시리스트엔 이미 올라가 있었던....ㅠㅠ
  • 취한배 2016/11/10 23:44 #

    정말정말 그래요. 저번 지넷 윈터슨 것도 짱이었어요. 저도 이 시리즈는 모조리 다 보려고 한답니다. 작가 라인업이 후덜덜+기대라. 그죠.ㅎㅎ
  • 2016/11/10 19:44 # 삭제 답글

    종이시계 작가죠? 종이시계는 저도 읽어볼려고 담아뒀어요. ㅎㅎ
    책 속의 식초아가씨가 톡톡튀고 개성있을진 몰라도 아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서 ㅠㅠ 뭔가 저랑은 안맞을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물론 제 친구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애도 아니고 휘휘 젓는 대신 이미 하고 싶은 말을 다다다ㅏ 쏘아붙였을 엄청난 식초아가씨라 ㅋㅋㅋ 피곤해서 요즘은 안만납니다. ㅎㅎ
    그래도 책이 궁금하긴 하네요 :)
  • 취한배 2016/11/10 23:46 #

    식초아가씨 톡톡 튄다고는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에 비하면 어른스럽고 듬직해서 저는 좋더라고요. 하기야, 원전에 너무 실망해서 기대치가 낮아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종이시계보다 훨씬 짧고 가볍게 잘 읽히는 맛은 있었어요. 피곤해서 안 만나는 친구를 떠올리게 할 정도는 아니지 싶은데, 그렇지만, 막 추천하기에도 좀 그렇고, 히히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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