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젤 Smoking

아자젤 - 8점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키득키득 웃게 하는 아시모프. 재치와 유머와 귀여움이 유감없이 발휘된 판타지 단편 연작이다. <로봇>이나 <파운데이션> 같은 대작 시리즈 아래 소품처럼 놓인 작품이라 더욱 사랑스럽다. ‘쓰는 기계’란 과연 이런 것이려나.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 건, 조지와 ‘나’(아시모프 자신으로 추정되고 그렇게 밝히고도 있음)의 캐릭터가 차차 자리를 잡아가기 때문으로 보인다. 술과 밥을 얻어먹고 ‘나’가 남긴 팁을 슬쩍하는 건 예사, 뻔뻔하게 돈도 자주 빌리는 조지는 이 모든 이야기(18편)를 들려주는 장본인이다. 그럼 ‘나’는? 조지에게 술과 밥을 사주고 기꺼이 ‘삥’을 뜯기는 관대한 청자.


무엇보다 내게는 아시모프의 비하(卑下)가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었는데, 한글날이니까 다음 한국어 사전. ‘비하’에는 ‘1.스스로를 낮춤 2.남을 업신여기어 낮춤 3.지위가 낮음’ 이라는 세 가지 뜻이 있고 내가 말하는 바는 1번이다. 조지가 ‘나’에게 쏟아내는 평가가 이런 식. ‘선생처럼 꼴 보기 싫은 무능력자’(42-43) ‘능력 없는 글쟁이’(111) ‘선생의 보잘것없는 머리’(136) ‘선생의 입맛은 참으로 조악하다고 할 수 있지요. 제가 듣기로는 글도 그렇다더군요.’(150) ‘선생 앞에서 성공한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꽤 매정한 일이라는 건 저도 압니다.’(170) ‘저는 아첨에 넘어가는 자들이 정말 역겹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누가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너무나 기쁜 나머지 정신을 못 차리는 선생처럼요.’(239) ‘선생의 그 비참한 글들’(305)


이런 식으로 ‘셀프 디스’하면서 아시모프 자신 얼마나 웃었을지 상상이 가기 때문이다. 앞날개 작가 소개란에 흔히 실리는 아시모프의 사진에서와 같은 그런 ‘무해한’ 웃음 말이다. 과학소설에서 이미 일가(한글날이니까 다음 한국어 사전, 2번 뜻이다. 학문이나 기술, 예술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이룬 독자적인 경지나 체계)를 이룬 대가가 스스로를 깎아내리면서 보여주는 유머에서 그이의 관대함, 다정함, 따뜻한 웃음이 느껴진다. 큰 사람은 남을 깎아내려서 자신을 높이려하지 않는다. 소품에서도 성품이 드러나는 멋진 아시모프다. 그러고 보니, <로봇>시리즈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전작섭렵의지가 솟는다.


이름처럼 아자젤은 악마일 텐데, 메피스토펠레스와는 다르다.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영혼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니, 요구할 수 없다. 영혼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외계생명체 아자젤은 인간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무식한’ 지구인으로서는 마법으로밖에 볼 수 없는 과학적 개입으로, 한 인간의 구성과 환경을 변화시킨다. 긴 시간으로 보자면 태양계 전체에 영향을 주어 어떤 때는 태양의 죽음을 2백5십만 년 앞당기기도 하나, 한 개인으로서는 알 수 없을 변화다. 한 편에 한 소원씩. 같은 발화자와 같은 청자 구성에 각기 다채로운 이야기들. 반복되는 구성이다 보니 살짝 가미되는 변주 또한 매력을 더한다. 발화자 조지와 청자 ‘나’의 캐릭터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발췌는「갈라테아」에서. 제목에서 연상 가능하듯, 그리스 신화「피그말리온」의 변주다. 조지의 조카 엘더베리가 조각해 놓고 (당연히) 사랑에 빠진 남체에 생기를 넣어달라고, 조지가 아자젤에게 부탁하는 장면. 아자젤은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라고 위에서 얘기했는데, 그렇다면 (신화에서는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아프로디테?…… 읽어볼 일이다.


「하지만 명심해.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 그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어야만 하고, 엘더베리를 무척이나 사랑하게 만들어야 해.」
「사랑은 쉬워. 호르몬만 좀 조절하면 되니까.」(318,「갈라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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