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Smoking

리스본행 야간열차 - 10점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들녘


책장의 읽은 책 코너를 둘러보다가, 세상에.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다시 꺼내 들어봤다. 그런 책이 사실 한두 권이 아니다만. 피에르 바야르에 의하면 FB(Forgotten Book,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 카테고리 되겠다. 내가 갖고 있는 건 두 권짜리 초판 7쇄인데, 영화 개봉에 힘입어 판과 쇄를 거듭했지 싶다. (역시, 확인하니 분권 판은 절판) 1권만 읽었다. 만듦새도 좋은 들녘 출판사다.


자기 삶과는 완전히 달랐고 자기와는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게 가능할까. 자기 시간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자각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154)


어째서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과 흠모로 낯선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소재인데. 책이나 그림이나 음악에 이끌려 그것들을 쓰거나 그리거나 작곡한 사람을, 그 사람이 지냈던 장소로 찾아가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 말이다. 금세 떠오르는 작품은 세스의 만화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다. 쓸쓸하니 말할 수 없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약간 다르지만 타부키의 <인도 야상곡>도 거론하고 싶은 건, 위 발췌문 때문이지 싶다.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곧 자기를 알게 되는 과정이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만나게 되는 계기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어학 선생이다 보니 말과 글에 대한 사색이 많고 멋지다. 그이가 좇는 작가이자 의사, 프라두의 문장들은 무게가 빡빡 실려 현란하다. 저자가 (파스칼 메르시어는 필명) 본명 페터 비에리로 펴낸 철학서들을 프라두의 문장에서 살짝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그레고리우스로 돌아와서, 말에 대한 사색 중 한 장면.


이 문장은 그가 현실 세계에서 입 밖에서 낸 첫 번째 포르투갈어였고, 실제로 효력이 있었다. 그는 말이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거나 멈추게 하는지, 어떻게 울거나 웃게 할 수 있는지 어릴 때부터 늘 궁금했다. 이런 의문은 어른이 된 뒤에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말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마치 요술 같지 않은가? (72-73)


내가 대학교양불어를 떼고 파리로 날아가 처음 입 밖에 낸 프랑스어는 (인삿말 빼고) 낭만적이지 않게도, ‘얼마예요?’였지 싶은데, 더 놀라운 건 상대방 말을 내가 알아듣겠더라는 사실이다. 6프랑(맞다, 유로 전 프랑 시절. 이러고 보니 정말 옛날 사람이로군)을 알아듣고 내민 지폐. ‘더 작은 돈 없어요?’ ‘없어요, 미안합니다.’ 내가 듣고 입으로 만들어내는 낯선 발음이 ‘효력이 있었다’는 게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는데…… 그레고리우스는 저렇게 멋지게 표현했구나, 훌쩍.


누군가를 좇는 것, 어찌 보면 탐정소설과 같은 장치일 수 있겠는데 탐정이 냉철한 관찰력으로 범인을 찾아 장소를 훑는다면 그레고리우스(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세스(약해지지만 않는다면~)는 자기가 겪지 않은 것에 대한 그리움(형용모순이다, 안다)의 시선으로, 자신을 매료시킨 작가를, 호기심을, 자신의 열정을, 그래서 자기 자신을 찾거나 재발견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억나지 않기는 2권도 마찬가지이고,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어서…… 열린 리뷰라고 해두자. 끝으로, 함께하는 웃음에 대해서.


이제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함께 웃었다. 그것은 마치 손이 닿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항 없이 가볍게 떠 있는 듯한 접촉, 육체적인 모든 접촉을 천하고 하찮은 기교로 보이게 하는 느낌. 그는 잡은 도둑을 놓아준 경찰에 관한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경찰이 대답했다. “우린 함께 웃었어요. 그러고 나니 그를 더 이상 가두어 둘 수 없었어요. 도무지 그렇게 할 수 없더라고요.” (316)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6/10/04 16:35 # 답글

    저도 합본으로 갖고 있어요. 아직 안 읽었는데, 역시나 언제 읽을 지는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ㅋ
  • 취한배 2016/10/05 17:28 #

    책 속의 책 문장이 묵직해서 집중력을 요하더라고요, 저한테는. 합본이면 책 자체도 좀 무거울 듯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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