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틈 Smoking

시간의 틈 - 10점
지넷 윈터슨 지음, 허진 옮김/현대문학


변주에 대해 생각해보는데. 원전이 있음은, 이야기의 개연성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과, 정해진 이야기라는 제약, 즉 단점이 다 있다는 말이겠다. 윈터슨의 셰익스피어<겨울 이야기> 변주는 기대 이상이다.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신화를 모티브로 했던 <무게>가 워밍업 정도로 여겨질 지경으로 <시간의 틈>은 절정이다. 얼핏, 디카프리오가 나왔던 바즈 루어만 판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가벼운 현대극 느낌인가 싶었는데 웬걸, 차고도 넘친다.


이야기꾼이 어떻게 ‘제약’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어떻게 기량을 자유자재로 쓰는지, 본보기가 되겠다. 셰익스피어가 낡지 않게, 아니, 셰익스피어가 더 돋보이게 하는 변주. 약간만 시선을 달리하면 이토록 큰 자유가, 아름다움이, 신선함이. 오, 문학이라는 것은. 셰익스피어 희곡의 캐릭터, 대사, 지문, 자간, 행간, 여백까지도 자신의 색깔로 촘촘히 채워 ‘내 이야기’를 하고 마는 천재, 지넷 윈터슨이다. 할 말 잃어 짤.


첫 페이지가 이렇고


(아아 루스 렌들. 둘 사이의 친분은 렌들 타계 직후 김명남 님의 친절한 번역 기사로 본 적 있다.) 끝 페이지가 이렇다.

다시 쓰이는 셰익스피어, 호가스 프로젝트 리스트는(작가들 라인업 좀 보시게!) 하나같이 설레고

 

첫 페이지와 끝 페이지 사이, ‘복수, 비극, 용서’(395)가 있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님’(398)이.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리오가 있고.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것들이…….”(340)
울게 하고 웃게 하고 감동하게 한다. 잃은 말은 나중에 찾아야겠다.


세상은 기쁨이나 절망, 한 여인의 운명, 한 남자의 상실과 상관없이 흘러간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작은 부분들 외에는 우리의 삶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히 바꾸어 놓는 일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다. 쉬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야말로 마음이 부서지거나 치유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너무나 꾸준하게, 또 확실하게 흐르는 시간은 시계 밖에서 거칠게 흐른다. 일생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바뀌지만, 그런 변화를 이해하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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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다다 2016/09/09 23:23 # 답글

    마지막 단락(376)은 읽고 또 읽어도 좋네요. 소리내어 읽어 보았어요. :)
  • 취한배 2016/09/09 23:34 #

    좋지요? 좋은 데가 어찌나 많은지, 아, 윈터슨은 정말 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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