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험한 과학책 - ![]()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 옮김, 이명현 감수/시공사 |
출판사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는 경우가 꽤 있다. 작은 딜레마. 나로선 중고로 사는 방법을 택하곤 한다. 이 책도 그렇고, 시공사가 좋은 책을 펴내는 건 부인하지 못하겠다. 엉뚱하고, 영리하고, 무엇보다, 귀엽다! 재치가 넘치는 그림이, 졸라맨인데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구나. 술술 넘기며 흥미가 동하는 질문의 장(章)만 읽어도 되는 구성이고, 각 장이 길지 않아 지루하지가 않다. 질문과 답변이 구어체라 더욱 그렇다. 물리학, 천문학, 화학, 의학, 생물학, 확률, 지구과학, 레고Lego학(?)... 총망라, 엉뚱한 질문에 주어지는 과학적 대답이다.
예컨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최대한 가까이 붙어 서서 점프를 한다면, 그리고 동시에 착지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74)


실제로 지구에 무슨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는 우리보다 10조(!) 배 이상 무겁거든요. 다들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면, 사람들은 평균 약 50센티미터 높이까지 점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딱한 지구가 즉각 반응을 보인다 해도, 지구가 아래로 밀리는 정도는 아마 원자 하나의 폭만큼도 안 될 겁니다. (75)
저 그림에서부터 반했다. 그러다가, 책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쪽은 여기.

우주는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단다. 일반 비행기로 우주에 닿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거기 머무르는 게 관건이라는 설명. 위로(높이로)가 아니라 ‘옆으로 이동’하는 필요 속도가 초속 8킬로미터라니, <초속 5센티미터>는 알아도……. 달팽이에게도 우주선이 꼭 필요한 이유이자, ‘높은 우주’가 아니라 ‘넓은 우주’가 알맞은 표현이겠다. 글보다 효과적인 그림 페이지이지 싶다. 게다가 이런 건 또 어떤지.

양이 풀뿐 아니라 장미도 먹는지가 궁금했던 어린왕자이건만, 친구가 내! 장미를;;……. ‘크기는 아주 작지만 질량은 아주 무거운 소행성이 있다면, 우리도 어린왕자처럼 그곳에서 살 수 있을까요?’(151)라는 질문. 글쎄, 어떨까. B-612의 아련함과 낭만이 과학과는 전혀 상관없음을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자신의 머리와 발 높이 사이의 중력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그곳에 어린왕자가 초대한다면, ‘노 땡큐’ 아니, ‘농 메르시’라고 하는 걸로.
좋은 책, 좋은 문장은 주로 한글파일에 옮기면서 읽는데, 이 책은 자꾸 전화기 카메라를 들이대게 된다. 글과 그림이 다 좋다.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데다가 똑똑하기까지, 매력이 철철 넘치는 ‘저자는 불이 붙거나 무언가 폭발하면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사람’(5, 경고)인 주제에, 마지막 장 ‘리히터 규모 15의 지진이 덮치면’(397)을 ↓이렇게 끝맺는다. 뭐야, 여태 정색하고 (이론상으로) 죽인 사람이 몇인데, 갑자기 초연한 모습이라니.

덧글
어쩌다가 저자의 테드 강연도 한 편 보았는데 그마저 귀엽더군요. 사다리 님도 좋아하실 것 같은 이 책,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ㅋ) 즐독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