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겨울 이야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 외 옮김/달궁 |
파울리나: 저도 역적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역적이 아닙니다. 단 한 분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바로 전하 자신이십니다. (…) 전하의 의심은 참나무나 바위가 단단한 만큼 단단히 썩어 문드러져 있는데도, 전하께서는 그 뿌리를 뽑으려 하지 않으십니다. 한 나라의 군주께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80-81)
겨울에 벌어지는 일은 아니고, 인생의 노년 정도 의미로 겨울이라고 했나 보다. 망상에 사로잡힌 폭군이 등장하고 비이성적인 왕의 명령을 차마 거역하지 못하는 충직한 신하와, 똑 부러지게 바른말하는 신하도 나온다. 왕비와 자식을 잃은 후에야 잘못을 시인하고 뉘우치는 왕. 질투도 망상도 신탁 하나면 싹 벗겨지니 참 쉽다. 죽음과 오해와 단절, 이 모든 난리가 ‘헛소동’만 같은 셰익스피어. 중반에 이미 이루어지는 카타르시스, 빤한 운명과 사랑과 복권.
그 와중 바른말하는 신하 파울리나, 충직한 안티고누스와 카밀로, 목숨보다는 명예를 지키려는 왕비 헤르미오네의 대사들이 아주 멋지게 잘 읽혀, 전달력에 초점을 맞췄다는 번역에는 끄덕끄덕. 설득력 약해보이는 일러스트 삽입 편집에는 설레설레. 달궁 출판사는 셰익스피어 동화책 만들기를 원했던 것인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 이 작품이 자주 언급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절대권력, 폭군에게 굽히지 않고 바른말하는 목소리들에 감동 받고 말았다. 시절 탓이겠거니.
지넷 윈터슨의 변주 <시간의 틈>을 읽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읽었다. 더운 여름날의 겨울, 윈터, 윈터슨, 라임부터가 좋다.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가 이미 민간 전설과 신화의 짜깁기, 변주이니 원전이라 하기에도 좀 멋쩍겠다만 현대적 재해석이 줄기차게 이어질 소스임에는 틀림없겠다. 의인화된 ‘시간’의 등장과 같은 그리스 연극적 요소가 나는 참 좋다. 16년의 세월을 스킵하는 해설 장면에서.
시간: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일이 더러 있기는 하나 대체로 누구에게든 시련을 안기는 나 시간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 실수를 바로잡기도 해서 선한 사람들이나 악한 사람들에게 두루 기쁨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 저는 오늘날 새로운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도 낡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케케묵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듯이 말이지요. (115-116)

덧글
그러고 보니... 사다리 님 서재가 지금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궁금하네용.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