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결혼했다 Smoking

아빠가 결혼했다 - 8점
마리나 레비츠카 지음, 노진선 옮김/을유문화사

 

나는 우리 부모님의 인생이 행복한 이야기일 줄로만 알았다. 비극을 극복한 승리의 이야기, 불가능을 극복한 사랑 이야기. 하지만 이제는 그분들의 삶에 오직 찰나의 행복만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붙잡고 축하해야 할 찰나의 행복. (266)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라는 통통 튀고 멋진 원제를 놔두고 ‘아빠가 결혼했다’란다. 하기야 원제를 그대로 썼다면 서점에서 기술ㆍ공학 칸에 가 꽂혔을 수도 있었겠다. 브라우티건의 송어 책이 낚시ㆍ레저 칸에 머물렀던 일화처럼. 소설이고, 트랙터의 역사를 쓰고 있는 사람은 ‘천재인지 약간 미친’ 건지 모를, 여든 네 살의 아빠이고 이 아빠가 새로 결혼했다.

영국으로 이민 와서 잘 정착한 우크라이나 가정의 우당탕탕(우장창창 아니다) 한 바탕 결혼 소동 속에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현실이 그려진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이리저리 핍박 받고 난민이 되었다가 ‘단지 살아남은’ 내 부모와 조국의 역사를 습득함으로써 내가 아빠와, 또 열 살 터울 언니와 화해하는 과정. 40대에 겪는 성장 소설이라고 해도 되겠다.

코믹한 터치가 아니었으면 무척 비장하게 들렸을 이야기. 솔직하고 거침없는 작가 덕분에 우크라이나와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다. ‘신부 수출국’이라는 악명으로만 기억될 뻔했던 국가. 그리고 노년의 성과 사랑도 있다. ‘잔치’는 서른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예순, 칠순, 팔순…… 계속 되는 거다. ‘성숙한’ 사랑이냐고? 글쎄, 사랑에 빠지면 모두 소년, 소녀가 되는 건지도. 그래서 아마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비결 중 하나가 사랑과 섹스 아닐지.


40와트 전구의 어스레한 불빛 속에서 아버지의 쭈글쭈글한 볼의 선과 그림자가 흉터처럼 깊어 보였다. 아버지는 천 년은 산 사람처럼 보였다.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가 영웅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탈영해 무덤으로 숨은 사건이나, 독일로 도망친 사건이 부끄러웠다. 나는 우리 엄마도 낭만적인 영웅이기를 바랐다. 두 분의 사연이 용기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를 바랐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두 분이 영웅이 아니라는 걸 안다. 부모님은 살아남았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391-392)


 

아빠가 결혼한 건 아닌데, 지난여름 한 바탕 우당탕탕 이후 아빠와 화해한 내가 있다. 곧 생신 가족모임, 또 얼마나 회춘하셨을지 살펴보겠다. 따로 사는 부모 각각의 연애 스토리도 고마울 따름이다. 부디 연애들 계속 하셨으면. 내 회춘은, 쩝.




덧글

  • 측근 2016/07/20 21:45 # 삭제 답글

    제 회춘도.. 쩝...
  • 취한배 2016/07/21 14:35 #

    그동안 저축해두었던 회춘 찬스 좀 쓰면서 잘 늙어보아요, 우리. 쩝쩝+ㅋㅋ.
  • 달을향한사다리 2016/08/01 17:41 # 답글

    맨날 10대들 성장 소설 읽으면서 공감하고 있는 제게 정말 필요한 건 이 책처럼 40대의 성장소설이 아닐까 싶네요....하아... <우크라이나어로 쓴~>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빠가 결혼했다>는 처음 들어요 ㅋㅋㅋ 어쨌든 위시리스트로...
  • 취한배 2016/08/01 23:05 #

    정말, 이 책이야말로 사다리 님께 어울릴 것 같네요? 저는 꽤 재밌게 읽었어요. 약간 이해 안 가는 캐릭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작가의 너그러움 같은 게 좋았다고 할까요. (터지는 위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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