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oking

- 10점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비채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 (…) 어쩌면 내 행동 덕분에 앨리스의 앞날이 편해질지 모른다. (124-125)


kindred. 동류, 일족, 혈연. 20세기 말과 19세기 초라는 시간 차이만으로 인류는 이미 다른 ‘종족’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경제활동과 문명과 문화와 가치관 같은 것들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한 세기 반의 시간차를 뛰어넘어서도 한 가지 특징으로 어떤 한 종족에 폭력적으로 포섭되는 상황이 19세기 미국에서는 존재했으니, 피부색깔이다. 검은 피부에다 여성이라는 ‘약점’까지 지닌 20세기 인간이 겪는 19세기 미국 남부. SF이고 역사소설이다.

나는 나인데, 내가 나일 수 있는 환경이 나를 지탱해준다는 자명한 사실. 다나는 1976년 캘리포니아에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아프리카계’ 여성으로 미국 시민이다. 똑같은 몸과 (그런 게 있다면) 영혼으로 1815년 미국 메릴랜드에 떨어졌을 때, 나는…… 노예다. 누군가의 소유물이고 내 생각과 의견은 없어야 하고 다른 이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죽어라 일해야 하며, 그러지 않았을 때는 채찍질을 감수해야 하는 ‘검둥이.’ 나는 나일 수 없어진다. 오직 살기 위한 연극, 그러나 나는 나여야 하겠고.


“나 어떡해?”
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충고해줄 수 없어. 네 몸이야.”
“내 몸이 아니지.” 앨리스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작아졌다. “내가 아니라 그놈 몸이지. 그놈이 돈을 치렀잖아, 안 그래?”
“누구에게? 너에게?” (322)


‘나’가 ‘나’이기 위한 투쟁이 역사를 만들어왔을 거다. (역사를 포함한) 현실 비판에 조미료처럼 가미된 SF, 타임슬립이다. 이쪽과 저쪽 시간의 흐름이 다른 건 여느 우주여행에서 보아온 바와 같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늘 그랬다. 과학소설을 빙자한 리얼리즘, 좋고 옳다. 주인공 다나가 현재의 시간 손실 없이 과거로 돌아가 어떤 큰 역할을 한다는 식의 영웅서사가 아니다. 다나는 그들과 함께 살았고 정의롭지 못함에 분노했으며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 가까이는 내 일신을 위해, 내 혈연을 위해.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kindred, 혈연을 넘어, 일족도 넘어, 동류. 우리는 모두 인류라는 동족이다. 그런 진리,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거고.




핑백

  • 술집에서 문득 본 진실 : 디스옥타비아 2018-06-09 01:55:58 #

    ... 다르지 않음이 이상하다. 지렁이(‘~’) 안에 다 있다. 뭔가가. 희, 로, 애, 락. 그리고 비밀, 비밀들. 완전하지 않은 세계들. <야생종>과 <킨>을 읽었다는 이유로, 지갑 안에 간직하고 있던 닳고 닳은 종이쪽지 사연을 들었다는 이유로, <디스옥타비아>를 방금 만났다는 이유로 무척 슬픈 ... more

덧글

  • 다다 2016/07/10 23:23 # 답글

    앗, 저 오렌지 쥬스에 알코올이 스며있을까요? 없을까요? 있다에 건배!
  • 취한배 2016/07/13 23:07 #

    정답+건배!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