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NoSmoking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 8점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여름언덕
 

제목을 바꿔 써 보자면, 에르퀼 푸아로는 어떻게 그자를 범인으로 몰아 자살로 이끌었는가?, 되겠다. 엉뚱한 바야르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변칙적인’ 걸작『애크로이드 살인사건』다르게 읽기를 선사한다. 보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독자, 일인칭 소설의 불확정성, 거짓말하는 건 아닌데 진상을 교묘히 은닉하는 생략의 묘미, 망상적 해석 등 크리스티 추리소설의 매력을 더욱 드러내 준다고 해도 될 듯하다.

비단 추리소설 읽기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문학 전반의 쓰기ㆍ읽기에 충고가 될 만하다. ‘일인칭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제공하는 것’(103)이라든지 망상과 이론이 혼합된 ‘주관적 진실’(175) 같은 얘기들. 아, 중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프로이트 할배에서는 살짝 지루해지기도 한다는 건 쉿. 그것만 빼면 원전『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크리스티의 미덕 중 하나는 다작(多作)일 텐데, 그래서 (나처럼) 바야르가 언급하는 작품을 다 읽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이 책 읽기에 전혀 지장이 없다. 친절한 바야르 씨는 중요한 작품일 경우, 줄거리까지도 잊지 않는다. 그렇지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보는 건 큰 실수일 거다. 책 제목이 질문. 그렇다면 답도 있을 터. 바야르가 논리적으로 찾아낸 로저 애크로이드 살해범은?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어 몹시 안타깝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제목이지 싶은데.


어째서 우리는 가끔씩 ‘보지 못하게’ 되는가라는 문제, 매우 프로이트적인 이 심리적 맹목(盲目)이라는 문제를 애거서 크리스티만큼 체계적으로 탐구한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문제를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제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실험을 하듯, 이야기들과 독자의 관계를 통해서도 제기하고 있다. 개개의 구체적인 일화를 떠나서, 그의 모든 책은 매번 똑같은 이야기, 즉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맹목이라는 문제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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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용의자A의댓글 2016/07/09 08:42 # 삭제 답글

    제가 안 죽였어요.
  • 취한배 2016/07/09 21:10 #

    용의자X더러 헌신하라고 해주세요.
  • 블랙하트 2016/07/09 14:43 # 답글

    피에르 바야르는 '바스커빌가의 개'를 비판한 '셜록 홈즈가 틀렸다'를 쓰기도 했죠.
  • 취한배 2016/07/09 21:10 #

    넴. 바야르의 책 여덟 권 모두 갖고(는) 있습니다. '셜록 홈즈~'도 이 책만큼 재미있겠죠?
  • rumic71 2016/07/09 15:53 # 답글

    아, 이게 로저의 시스터 컴플렉스를 증명한...
  • 취한배 2016/07/09 21:11 #

    로저가 아니라 아마,,, 의사의 시스터 컴플렉스이겠지요;?
  • rumic71 2016/07/10 14:54 #

    아참, 셰퍼드 의사였죠.
  • hansang 2016/07/09 16:24 # 답글

    이거 재미있죠!
  • 취한배 2016/07/09 21:11 #

    넹!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의 맛을 제대로 짚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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