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Smoking

칠드런 액트 - 10점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한겨레출판


The Children Act, 아동법이란다. 유능한 판사 피오나가 주인공이다. 판사가 유능하다함은 어느 나라에서처럼 떼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또한 ‘인간미 없는 관료체제’(124)로서 기계적인 법 적용만을 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려 노력한다는 뜻일 터. 서류를 검토하거나 변호사들의 변론만 듣고 성급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만나 살펴보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인간미.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순간임에야.

아. 그런데 어쩌지. 구했는데 구하지 못한 건. 종교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그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 준 판결 이후 생겨난 뜻밖의 큰 과제는. 공적 정의를 실현해놓고 사적으로 보호해주지 못한 죄책감은. ‘사적 정의’라는 말은 모순인가. 그러면 사적 마음 씀, 배려라고 해야 할까. 매큐언의 전작 중 <이런 사랑>에서 본 무시무시한 “사랑합니다”가 얼핏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와 같은 상황 설정은 정말이지 매큐언이군, 했다.

피오나는 유능한 판사. 즉, 공적으로 정의로운 사람이지만 (이상한 말을 또 쓰자면) ‘사적 정의’에는 둔감했을지도 모르겠다. 법정에 세울 수 없는, 감정이라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법보다 훨씬 더 자주 억울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드는 그것. 피오나 자신도 부부관계에서 직접 느꼈던 배신감 같은 것.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판결로 구한 생명은 사실, 더더더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감정과 판단의 존재다. 피오나를 포함해서, 당신과 나처럼. 유능한 판사만큼이나 매큐언 같은 문학이 존재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그러다 남편을 쳐다보았다. 잭은 그녀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다리를 벌린 채로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여전히 잘생긴 사람 좋은 얼굴은 분노로 굳어 있었다. 은색 가슴털 한 줌이 열린 셔츠 옷깃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삐져나와 있었다. 피오나는 가끔 남편이 그걸 빗으로 손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세상이 그런 세세한 일들로, 유약한 인간성을 드러내는 그런 자질구레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아 그녀는 눈길을 돌렸다. (284)






작품에 메인으로 흐르는 테마곡으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예이츠 시, 벤저민 브리튼 곡. 끝 구절이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161)


 


덧글

  • 다락방 2016/07/05 08:19 # 삭제 답글

    읽으셨군요!! 좋죠!! 저 정말 이 작품 너무 좋았어요. 판사가 판결문을 읊을 때도 너무나 우아했고요. 그 후에 일어난 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너무 인상 깊었어요. 문득 츠바이크의 [연민]도 생각났어요. 서투른 연민은 얼마나 나쁜가, 하는거요. 꼭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자신을 구원해줬다 생각되는 구원자에게 지나치게 크게 의존하는 게 내내 신경 쓰이더라고요. '여기 까진 내 할일이었어, 그렇지만 이젠 가버려' 하는 마음이 불쑥 생겼었어요.

    한편으로는 피오나의 부부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분명 배신감도 느꼈고 돌아서기도 했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용서와 받아들임이 가능해진 관계에 대해서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라는 게, 겉에서 보기엔 알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얽혀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네 권인가 읽었는데요, 이 소설이 제일 좋았어요.
  • 취한배 2016/07/06 00:24 #

    넹. 여전히 '센' 매큐언. 정말 잘 읽었어요. 저는 소년의 '믿는 인자'라고나 할까요, 의존하고 전적으로 자신을 기탁하는 그런 성향이요, 종교에서 그랬듯 다른 대상으로 옮겨간 그것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리고 그 소년만 집중해서 보여주지 않고 약간의 조짐만 느껴지도록 독자를 놔뒀다가 띄엄띄엄 언급하는가 싶더니 확 터뜨리는 게 정말 멋지더라고요.

    부부관계, 여기 기억나세요? 피오나가 혼자 침대에서 울다 잠들었던 장면. 잠이 깨어 '다른 베개 쪽으로 손을 뻗다가, 등 뒤 옆자리에 길게 누운 따뜻한 몸이 손에 닿자 흠칫 놀랐다.'(289) 저 '따뜻한 몸'이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요. 센 매큐언이면서 한 자락 훈훈함을 남겨주어 아마 다락방 님도 제일 좋아하시게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매큐언 소설 중 최고작, 음... 저도 이 작품으로 할래요.ㅎㅎ
  • springhascome 2016/07/05 09:00 # 답글

    취한배님, 이 책 저도 참 좋아해요. 하지만 이 댓글을 남기는 이유는, 덕분에 이 아침에 꼭 어울리는 노래를 듣게되어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좋은 하루 보내요!!
  • 취한배 2016/07/06 00:26 #

    비 많이 내린 하루 잘 보내셨어요, 스프링 님? 아침에 어울리는 노래여서 정말 다행이었네요! 그런데 예이츠의 원시를 찾던 중 옳은 철자가 Sally인지 Salley인지는 모르겠더라고요. 보통명사로 '버드나무'는 아닌 것 같고. 지명이나 사람이름 '샐리' 정원인 듯도 하고. 힝. 아무튼. 고맙다는 말씀 고맙습니다.
  • 다다 2016/07/05 15:35 # 답글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ㅠㅠ
  • 취한배 2016/07/06 00:27 #

    왜요? 아직 '젊고 어리석'어서요?ㅋㅋ (저처럼. 여전히. 아직도. 계속. 어쩌면 영원히.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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