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 NoSmoking

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 - 8점
잭 머니건.모라 켈리 지음, 최민우 옮김/오브제(다산북스)
 

‘브리짓 존스와 돈 후안이 결합된 듯한 별의별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에 와 닿는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연애 에세이를 써 온 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앞날개) 모라 켈리와, ‘잘생겼지만 슬프게도 여자 친구가 있다는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앞날개) 잭 머니건이 함께 쓴 연애 상담서. ‘연애 수업’을 위해 31편 명작 소설을 들먹인다. 그리고 아주 잘 들먹인다.


우리에게 번역 출간되지 않은 제이 매키너니『불타는 도시의 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무한한 농담』, 필립 로스『사바스의 극장』 세 편을 제외하면, 반 정도 수는 읽은 소설들이라 (휴, 다행;) 더욱 흥미진진하다. 각 작품의 줄거리를 잘 상기시켜 줄 뿐 아니라 필요한 대목을 짚어 충고해주는 내공이 얕지 않다. ‘함께’ 썼다지만 ‘모라의 이야기’와 ‘잭의 이야기’가 챕터별로 따로 등장한다. 모라의 이야기 끝에 가끔씩 짧게 잭의 한마디가 있는 경우도 있고. 남녀 목소리가 화음을 잘 이루는 이중창 같다. 각 단락 제목들이 특히 별미다. 해당 단락에서 다루는 소설의 제목을 살짝 비틀어 붙였는데 몇 가지만 옮기자면 이렇다.


1. 실비아 플라스,『벨 자』: 망할놈의 뚜껑The Hell Jar
6. 샬럿 브론테,『제인 에어』: 제인의 에러Jane Erred
10. F. S.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별로 안 위대한 개츠비Not-So-Great Gatsby
11.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무한한 농담』: 무한한 제스처Infinite Gesticulation
19. D. H. 로렌스,『채털리 부인의 연인』: 부인의 말 많은 연인Lady's Chattering Lover
22. 허먼 멜빌,『모비 딕』: 초(超)머저리들Moby Dickheads
26. 버지니아 울프『등대로』: 개집으로To The Doghouse


대충 봐도 라임 맞춘 말장난이 귀엽고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책의 원제는 『Much Ado About Loving』. 셰익스피어『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서 따온 말장난일 터인데, 저자들의 언어감각에 비하면 번역 제목이 좀 떨어진다 싶다. 선택된 31편의 명작 중에 셰익스피어는 없다만 첫 챕터 제목이 ‘헛소동’이기는 하다. 위 단락 중 11번, 『무한한 농담』은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언급되어 늘 궁금했는데 잭 머니건의 친절한 설명으로 대충 감은 잡게 되었다. 그렇다,『이것은 물이다』의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1996년에 발표했다는 장편소설이다.


수다쟁이 남자를 파헤치기 위해 잭 머니건이 들고 나온 작품으로, ‘최근 기억나는 작품 중 가장 장황한, 혹은 수다스럽고 미사여구 천지인 데다가 병적일 정도로 나불거린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혹은 그저 엄청나게 말이 많다고 할 수밖에 없는’(110) 소설이란다. ‘천 페이지가 넘는 데다 말이 끝없이 이어지고, 동의어를 마구 쌓아올리며 독자를 기진맥진하게 하는, 그리고 진심으로 남성적인 (하지만 무척 놀랍기도 한) 소설’(110)이라니, 휴. 번역되어 나오더라도 읽을 자신이 있을지는 모르게 되었다. 땡큐; 잭.


작가는 그가 첫 데이트에서 했을 법한 것과 거의 똑같은 짓을 소설 속에서 한다. 이유도 똑같다. 그는 인정받고 싶은 절박한 욕구 때문에 외롭고, 불안하고, 신경질적이고, 안절부절못하며, 별나게 굴면서도 자기 자신의 특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끼며, 그걸 당신에게 보여주지 못해 절망한 상태다(왜냐하면 이건 그의 데이트니까).
그래서 그는 떠든다. 떠들고, 또 떠든다. (111)


떠들고 또 떠드는 이유? 쫑알쫑알, 상대에게가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끝없이infinite 말하는 이유? 고독해서란다. ‘아무도 그들에게 (그들 수준으로) 말을 걸어오지 않는 데 너무 길들어 있어서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 결코 알지 못’해서(114). 이런 사람과 함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애 상담이 이 책의 취지인 만큼, 우리의 잭은 여느 때처럼 실용적인 답을 준다.


그러니 만약 촛불이 놓인 테이블 맞은편에 입을 닥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앉아 있다면, 중간에 말을 끊어라. 그 사람에게 당신에 대해 뭔가 알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직접적으로 물어라. 만일 그가 말을 물린 다음 사과한다면-어쩌면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고백할지도 모른다-, 그 남자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그는 자기 에고의 기나긴 독백을 들어줄 관객 말고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단 얘기다. 꼭 시도해보라! (114)


쉽다. 쉬울까? 쉽더라. 이 충고를 읽고 실행한 건 아니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지 싶은데.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저 쉬워 보이는 팁을 알지 못했을 때는 어렵더라. 힘들었고 피곤했고 기가 빨리는 것 같고. 관객을 필요로 하는 에고이스트라 여겨졌던 이가 ‘괜찮은 사람’으로 밝혀지는 과정, 재미없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친해짐, 사귐, 연애라고 부르기도 할 것이다. ‘헛소동’이면 또 어떤가. Nothing의 자리에 Loving이 잠시 오기도 하는 야단법석Ado이라면.


출간순을 따르지 않고 읽다보니 『고전의 유혹』(을유문화사, 2012) 보다 먼저 만나게 된 잭 머니건인데, 읽고 풀어주는 이 저자의 능력에 계속 기대어보아도 좋겠다 싶다. 읽어야 할 원전이 늘어나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터이고. 사려 깊고 유머 있고 글 잘 쓴다. 감성지능을 사랑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 그 능력이 뛰어난 글쟁이이자 책쟁이. 단락 제목 중 가장 짧고 웃긴, ‘개집으로’ (버지니아 울프『등대로』) 편에서 잭이 언급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감성지능이라는 개념을 사랑한다. 그 개념은 우리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이 그냥 괜찮은 사회적 특성 정도가 아니라 실제 인지력이자 인간 존재의 ‘지능’ 전반에 불가결한 구성요소라는 점을 심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이 마침내 깨달았음을 뜻한다. (253)






덧글

  • 말을물린댓글알바 2016/06/07 03:20 # 삭제 답글

    삐질, 땀 흘리다가 삐질, 렵니다.
  • 취한배 2016/06/07 16:29 #

    삐질, 땀은 흘려도(더우니까네) 삐지시는 건 안 됩니다.
  • 2016/06/07 04:44 # 삭제 답글

    실비아 플러스의 벨 자는 어쩌다가 뚜껑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어떻게 해석해봐도 jar는 뚜껑이 될 수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암튼 이런 영어 말장난은 번역하기 무지 어려울 것 같네요 ㅎㅎ
  • 엉터리번역로봇 2016/06/07 07:06 # 삭제

    (조심스레) 그, 딸기쨈 같은 거요. 병뚜껑 잘 안 열리는 거요. fu** the hell 소리 나오게 하는 거요. 술집에서 have a jar 해야 하는데 opener도 없고 이빨도 시원치 않아서 병뚜껑 안 열리고 뚜껑 열리려고 하는 그런 거요. (아닐까요?)
  • 취한배 2016/06/07 16:31 #

    엉터리번역로봇만세! 건배! (아닌가...?)
    그냥 '헬 자'라고 했으면 더 나았겠죠? 번역이 어려웠으리라 저도 짐작짐작. 음음.
  • 시간외근무로봇 2016/06/07 07:09 # 삭제 답글

    좋아할 것 같아서 윤대녕, <도비도에서 생긴 일> 중에서

    “씨발놈, 뒤로 볼일은 혼자 다 보면서 염결한 척하기는, 카피 시인 주제에.”

    좋아하지 않는다면, 시간 외 수당은 안 받겠습니다.
  • 취한배 2016/06/07 16:32 #

    시간외근무로봇 주제에. 누가 보면 취한밴줄 알겠어요;
    좋아...요. 시간 외 수당 받으러 오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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