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Smoking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박상우 지음/세계사
 

박상우 소설집. 총 여덟 편의 작품인데 순서대로「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적도기단」, 「돌아오지 않는 詩人을 위한 심야의 허밍코러스」까지 읽었다. 서재 책꽂이에 이상문학상 작품집 23 (1999년)『내 마음의 옥탑방』이 있는 걸로 봐서는 첫 만남이 아닐 터이니, 다시 첫 만남, 도로 첫 만남이라고 할까. 백지 상태로, 그리고 모종의 계기로 (다시) 읽게 된 박상우 작가. 80년대 배경이고 그 시절 유난하지 않았던, 그리고 나로서도 낯설지 않은 ‘우리’라는 단어를 포착했다. 우리, 다른 말로 동지, 시대정신 같은 거. 연달아 다 읽지도 못한 주제에 중간기록이랍시고 써 보려 앉았다.


지금은 낯설고 ‘후질’ 수도 있을 말, ‘우리’에서 나는 왈칵 그리움 같은 걸 느낀 모양이다. 대학시절 친구였던 여섯이 오랜만에 모인 술자리, 2차, 3차, 자리를 옮기면서 하나하나 줄어가는 ‘우리’였다가, ‘우리’일 수 있는 최소 숫자인 둘까지 갔다가, 마침내 그 둘의 해체 또는 결속까지를 암시하는「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명령을 받아 임시로 ‘우리’였던 둘에서 아예 시작하는 군대 내 상병과 일병 이야기, 수직과 수평에 대한 아름답고 깊은 사색 「적도기단」. 시대적 비극으로 인해 사소한 농담이 사소한 농담일 수 없는, ‘우리’가 아니었다가 ‘우리’로 포섭되었다가 다시 ‘우리’에서 배제되고 마는 「돌아오지 않는 詩人을 위한 심야의 허밍코러스」.


90년대에 성인이 되었고, 80년대 학번 선배를 멀지 않은 곳에서 보긴 했으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1980년대다. 이토록 밀도가 높았던가, 박상우 작가. 미처 몰랐다. ‘우리’나라나, ‘우리’정부 같이 희석된 ‘우리’ 전의 ‘우리’에 대한 향수. 특수한 기표로써의 ‘우리’가 구호나 프로파간다가 아닌, 역사도 아닌, 예술로 존재한다면,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도 그 하나이겠다. 찬찬히 천천히 볼 생각이다.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와『인형의 마을』을 읽기 위한 기상, 눈(雪)으로 시작하는 폭설과 폭양. 멋지다. 이상하게 울컥울컥한다. 지금 ‘우리’ 중엔 그때 이별을 고했던 각자들도 있을 텐데. 그런 우리를 위한, 지금 우리도 위한 전사(轉寫). ‘모종의 계기’인 너는 고맙고.


여섯이었던 우리. 그리고 지금은 셋만 남겨진 우리. 응집된 환상이 역사를 만들고, 그 환상이 깨어진 뒤에 인간들은 자아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 간다고 말한 사람이 우리 중 누구였던가. (23,「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돌아오지 않는 詩人’이 멋들어지게 불렀다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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