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즈광, 히피, 마약중독자 그리고 NoSmoking

나는 재즈광, 히피, 마약중독자 그리고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였다 - 8점
키라 밴 겔더 지음, 서민아 옮김/필로소픽


제목 참 길다. 키라가 겪는 경계성 인격장애 이야기. 집착, 불안정, 충동, 감정의 급작스러운 변화 등 감정조절장애로 인한 고통, 거기에서 헤쳐 나오려는 노력이 담겼다. ‘경계성borderline’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오래전에 의사들이 그 증상들을 신경증 환자와 정신병 환자의 경계쯤으로 봤기 때문’(211)이란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모두가 익히 아는 감정들을 극도로 예민하게, 그리고 극도로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험담이어서 어떤 때는 내 얘기로 또 다른 때는 주변 친구 얘기로 읽힌다. 


“경계성 인격장애란 기분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를 말합니다. 버림 받는 것에 대한 공포, 불확실한 자아감 같은 거지요. (…) 자살행위. 자해. 통제 불가능한 분노. 불안한 인간관계. 충동적인 행동. 스트레스를 받으면 편집증이 생길 수도 있어요. 심한 경우 다른 인격체로 행동하는 해리현상(dissociate)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36)


그러면 경계성 인격장애가 잘 ‘배양되는’ 환경은 어떤 걸까.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함’이라고, 키라가 주구장창 인용하는 리네한 박사의 의견. 무시하거나 듣지 않거나 부정만 하거나 일관되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보호자를 둔 어린 시절이었다면, 물론 그런 보호자 밑에서 자란 모든 아이가 다 인격장애 환자로 성장한다는 얘기는 아니겠다만, 마침맞은 환경이라는 의미. 무척 잘 이해된다. 이것은 아마 성인이어도 해당되는 환경이지 싶다. 무반응, 늘 무시하고 듣지 않는 상대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특히 예민한 사람이라면 금세 고개를 주억거릴 설명.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모든 경험은 격한 감정, 감정조절장애의 악화, 버림받은 느낌, 고립감, 수치심을 증가시킨다. 우리는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은 점점 더 파괴적이고 극단적이 되며, 그 결과 더욱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더 심하게 비난을 받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경계성 인격장애의 모든 증상들을 두루 갖추어, 결국엔 아주 당연한 듯 자신조차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194)


자기 질환을 확인하고 공부하고 상담하고 행동치료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기록하고, 키라는 마침내 극복했습니다, 라는 해피엔딩일까? 아니다. 무 자르듯 완쾌나 치료 완료라는 말을 쓸 수 없는 게 인격장애. 키라는 많이 나아졌고, 그건 확실하나, 어떤 상황이 닥치면 더 심해지기도, 멀쩡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다시 무너지기도 하지만) 굳건히 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까지도 무척 뿌듯하고 든든해지는데. 자신의 고통과 경험을 이렇게 차진 문장으로 잘 써내는 건 도대체. 글솜씨가 원래 좋은 건가, 고통이 글솜씨를 키운 건가.


전자이겠지. 그런데 질환을 앓고 기록하는 와중에 (아마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 걸 보면 후자의 영향도 있을 듯하다. 명민함과 예민함이 만들어내는 글쓰기. 엘리자베스 위첼의 <프로작 네이션>(민음인, 2011)이나 내가 경전처럼 여기는 알코올 의존증 에세이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나무처럼, 2009), 그리고 그 친구 게일 캘드웰의 <먼 길로 돌아갈까?>(정은문고, 2013) 류의 책을 연상하게 한다. 옳거니, 저 책들 옆에 고이 모셔야겠다, 키라 밴 겔더.


<The Buddha & The Borderline>이라는 원제에는 확연히 드러나는 바, 키라가 실천하는 변증법적 행동치료는 아주 자연스럽게 불교의 수행법과 연결된다. 종교 색을 배제하려고, (그리고 선정적이려고?) 이런 불편하고도 긴 번역제목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만, 글쎄. 그리하여 개정판은 이렇더라. 제목은 더 나은 듯하나 표지가 이건 뭐. (칙릿? 어쩌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장 표지도 이렇진 않던데.


키라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키라 밴 겔더 지음, 서민아 옮김/필로소픽

 

끝으로 누군가에게 보너스.


그때 나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위대한 마법사의 영상 앞에 벌벌 떨며 서 있는 장면을 떠올렸다. 도로시는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청하기 위해 강한 힘을 지닌 이 인물을 찾아 지금까지 먼 길을 여행했지만, 강아지 토토가 커튼을 젖혔을 때 그는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하는 초라한 노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에게 있다고 믿었던 그 모든 힘과 통제력이 증발되고 말았다. 나는 도로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커튼을 젖혔더니 두려움으로 가득 차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279)





덧글

  • 술쟁이댓글알바 2016/05/22 09:13 # 삭제 답글

    댓글알바 그만 두고, 도로/시나 써야겠다. 토토를 할까.
  • 취한배 2016/05/22 13:01 #

    도로/시 써주세욘. (댓글에다가.) 토토나 들어야겠다.
  • 2016/05/22 09:40 # 삭제 답글

    댓글알바 그만두면 제가 하겠습니당 ㅎㅎ
    하루에 두번 이상은 오거든요.
    이상하고 취한 밤
  • 취한배 2016/05/22 13:02 #

    이히히 완벽한 조건의 술쟁이 포 님이시당.
    일당은... 사랑으로 지급하는데, 괜찮겠어요, 이상하고취한밤나라의포앨리스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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