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파버 Smoking

호모 파버 
막스 프리쉬 지음, 봉원웅 옮김/생각의나무


나는 숙명이나 운명을 믿지 않는다. 기술자인 나는 확률적 공식들을 가지고 계산하는 데 익숙해 있다. 숙명이 뭐란 말인가? 나는 인정한다. 타마울리파스에 비상착륙하지만 않았어도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 모든 일이 그렇게 된 것은 단 하나의 우연이라기보다는 일련의 우연들의 산물이다. 헌데 숙명이 뭐란 말인가? 비개연성을 경험 가능한 사실로 인정하기 위해 신비주의 같은 건 필요 없다. 나에게는 수학이면 족하다. (37)


신비주의 같은 건 필요 없는데, 운명을 얘기하기 위해, 또는 운명의 무게를 들려주기 위해 우연을 남발하는 이야기는 글쎄. 1퍼센트 확률이 (하필이면) 내게 떨어지는 건 우연인가 운명인가. 묵직한 추, 중력 같은 것이 끌어당기는 듯한 우리말 단어 ‘운명’과, 구름처럼 새털처럼 가벼운 ‘우연’이라는 단어를 써놓고 한참 들여다본다. 운명과 우연은 반대말인가. 이후 ‘모든 게 달라졌을’ 한 순간의 우연이란 녀석은 오히려 운명과 비슷한 말 아닌가.


며칠 전 쫑알대는 입술에 대고 나는, ‘도구의 인간’을 바보같이 '호모 파브리스'라고 말해 버렸는데, ‘호모 파베르’가 옳은 단어다. 파브리스는 그냥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름이고 호모 뒤에 붙여버린 건, 운명 아니고 우연일 거다. ‘파브리스’에서 왠지 모르게 나는 만지작만지작, 뭔가 만들어내는 손을 연상하기 때문일 텐데, 그런 연상이 건망증이나 멍청함이라고 한다면, ‘우연히’ 빈틈을 보여준 거라 할 작정이다. 빈틈이 너무 많은 건 글쎄, 매력이라 우길까.


기계적, 합리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겪는 운명적, 숙명적 사건이 소설의 내용이다. 프리쉬가 브레히트와 친분이 있었음을 알고는 있는데, 이 작품에도 소격효과 같은 것이 있어서 초반부터 스스로 ‘스포’한다. 놀랄 만한 사건을 미리 뿌려놓고도 여유만만하다고 할까. 작위적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아쉬울 어떤 아우라가 있다. 신비주의자 아니고, 무신론자인 나는 운명처럼 무거운 우연을 생각하곤 한다. ‘운명이다’를 ‘우연이다’로 읽기도 하는 5월이다.


임종을 대비하여 유서를 쓰다. 나의 보고서들, 편지들, 노트들, 그리고 내가 작성한 모든 서류들은 곧바로 폐기해 버릴 것. 그것들은 맞지 않으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빛 속에 존재하는 것. 근자에 만난 코린토스의 노인처럼 그 어딘가에서 당나귀를 몰고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지도 모른다. 금잔화, 아스팔트, 그리고 바다를 비추는 빛 안에서 스러져 버림을 알게 된 기쁨을 우리의 딸아이가 노래를 부를 때처럼 간직하며. 순간 속의 영원. 존재했던 것은 영원히 존재한다. (352)


5월 5일 (1911년) ‘우연’히 태어나서 4월 4일 (1991년) ‘운명’한 막스 프리쉬, <몬타우크>로 만났던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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