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NoSmoking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데이비드 실베스터 지음, 주은정 옮김/디자인하우스


베이컨이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지 궁금했던 건 아니다. 베이컨을 늘 좋아했다. 고립된 실내 공간에 뚝 던져진 듯 놓인 덩어리. 상처 같기도 하고 고통 같기도 한 뒤틀어진 살. 정돈된 혼돈, 잘 ‘조절되고’ 절제된 우연, 강렬함, 폭력성, 괴물. 들뢰즈가 써낸 <감각의 논리>의 아우라까지 보태어진 데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시작 장면들에 사용되어 더욱 좋아하게 된 경우이겠다.


‘베이컨을 좋아한다’고 (다시) 말할 기회가 통 없었던 건, 예술에 대한 논의를 할 기회가 언젠가부터 통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늦게, 아주 늦게 책으로 엮여 나온 베이컨-실베스터 인뷰터집을 계기로 오랜만에 말해 본다. 베이컨을 좋아한다. 그의 삶에 대한 욕심과 사람에 대한 욕심과 베풂과 멋 부리기와 괴팍함과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망과 그림에 대한 진중함까지 모두 포함해서. 내가 화가였다면, 아아 내가 화가였다면, 했을 때는 베이컨의 작품 같은 것을 그리고 싶은 터였다고, 감히 막 말해본다.


훌륭한 미술은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 질서 안에 대단히 본능적이고 우연적인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같은 것들은 사실을 정리하여 보다 격렬한 방식을 통해 신경계로 되돌리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178)


거창한 예술론이나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소박하기도 하고, 생활인으로서 예술가의 모습이다. 어느 시절 그냥 툭 내뱉는 말, 말들. 경전처럼 여겨야 할 베이컨 경구들은 아니고 성실하게 답하고 질문하는 어떤 태도, 특정 지점의 스케치. 베이컨이 초상화를 그릴 때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면 그리지 못한다고 하는 점과 마찬가지로 인터뷰어도 지인이었지 싶다. 베이컨이 그린 실베스터의 초상화가 있는 걸 보면 그렇다. 그건 자코메티와의 훌륭한 인터뷰집을 이루어낸 제임스 로드의 책까지도 연상하게 하는데, 자코메티가 그린 제임스 로드 초상화와 그 작업 과정은 또 어찌나 멋진지…… 다른 데로 새지 말고.


그림이나 책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감상자, 독자로서 작품을 작게 만드는 리뷰를 쓸까봐 늘 걱정하는 편이다. 향유자가 그럴진대 창작자는 어련할까. 베이컨은 말로써 자신의 작품을 작게 만들지도 크게 만들지도 않는다. 솔직하고 성실하다. 뜬구름 잡지 않고 멋 부리지 않고. 그리고 사실, 진실, 베이컨을 보려면 그림을 접하는 게 옳을 터이나, 사랑에 겨워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응답하는 스핀오프,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이다. 또 다른 훌륭한 소스로는 영화 <사랑은 악마>가 있고 애인 조지 다이어와의 이야기를 보려면 소설 <토니와 프랭키>(현대문학, 2007)가 있다. 후자를 다시 들춰보니 옮긴이의 말 이렇게 끝맺고 있다.


“그대 자신에게 진실하라. 그대가 남을 속이지 않듯이.”
그와 동명이인인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남긴 명언이다. (2007년 9월 양진성)
(알랭 압시르, <토니와 프랭키>, 294)


프랜시스 베이컨, 화가. 1909. 10. 28~1992. 4. 28





덧글

  • 2016/05/05 06:35 # 삭제 답글

    베이컨 저도 참 좋아하는데 말이죠. ㅋㅋ 그런데 미친 천재 화가일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정상적인(?) 소탈한 사람이었나보군요. 신기신기.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특히 사랑 이야기요.

    이번 여행 중(여행 다녀옴) 바티칸에서 베이컨의 교황 그림을 발견하곤 동생에게 여기서 발견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사람 그림이라고 얘기해주었는데 말이죠 ㅋㅋ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보면 볼 수록 더 보고 싶은 화가의 그림입니다.
  • 취한배 2016/05/07 19:26 #

    성실하고 정상적인(?) 천재 화가로 정리해야 할 듯요. 우리 얘기 한 적은 없는데 포 님 베이컨 좋아하시리라는 감이 와요. 이런 거 보면 희한희한.ㅎㅎ 베이컨을 다룬 영화 <사랑은 악마Love is the Devil> 포 님도 정말 좋아하실 것 같슴미다.
    베이컨의 교황 그림이 바티칸에 있군요?! 비명 지르는 그 입, 베이컨은 모네 작품 (‘일몰’)처럼 그리고 싶었다는 뒷이야기가 이 책에 나오더군요. 포 님 여행과 또 이렇게 연결되다니 아잇, 좋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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