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8: 유형지 엑스에서 술이깰때까지자시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술을 마신 다음날 으레 찾아오는 모든 증상을 가진 채 아침을 맞았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술을 마신 다음날 광합성을 하면 좀 나아지는 경험을 오후에 또 한 번 했으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술을 마신 다음날 광합성을 해 좀 나아진 증상을 한 채 귀가하여 보니 책상 위에 ‘리츠모텔’이라 적힌 노란색 성냥통이 있었고 담배 두 개비를 다 피울 동안 쳐다보고 앉아 있자 다정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무뚝뚝하게, 그러나 나는 나름으로 다정함을 알아챘는데, 누군가가 어제, 그러니까 리츠모텔에 가기 전에 건네준 바나나 맛 몽셸이 떠올랐고 어제의 가방에서 바나나 맛 몽셸 상자를 꺼내기에 생각이 이르렀다. 상자는 취해 비틀대는 사람마냥 한쪽 귀퉁이가 구겨지고 찢겨 틈으로 손이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는데, 어제 귀갓길에 하나를 꺼내어 와구와구 씹어 먹었는지 어쩐지는 알 수가 없고 단지 혼자 발이 꼬여 넘어지는 바람에 상자가 취해 비틀대는 사람마냥 한쪽 귀퉁이가 구겨지고 찢겼는지도 모를 일이나 어쨌든 상자가 어김없이 가방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고 거의 소리를 내어 말할 뻔 한 정도로, 누군가 봤으면 허밍을 하는가 보다, 할 정도의 소리를 냈지 싶은데 그리하여 이제는 책상 위에 ‘리츠모텔’이라 적힌 노란색 성냥통 옆에 바나나 맛 몽셸 봉지 하나가 놓이게 됐다. 어제 리츠모텔에 가기 전에, 바나나 맛 몽셸 상자를 받기도 전에, 그러니까 영문법에서 어떤 전치사가 결과와 목적으로 다 해석될 수도 있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가고 보니 바나나 맛 몽셸 상자를 다정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무뚝뚝하게 건네준 사람으로부터 받았고, 가고 보니 리츠모텔에는 조금 덜 무뚝뚝하게 그러나 손을 잡지는 않고 들어갔는데, 바나나 맛 몽셸 상자를 받기 위해, 리츠모텔에 가기 위해, 나는 전철에서 잡지 『Axt』에 실린 「유형지 엑스에서」를 읽었고 다시 한 번 정영문에 반했다는 말을 다정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무뚝뚝하게 바나나 맛 몽셸을 건네준 사람에게 리츠모텔에서 하고 만 것인데 그건 리츠모텔에서 나온 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술을 마시게 된 술자리에서, 다정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무뚝뚝하게 바나나 맛 몽셸 상자를 건네준 사람이 황정은 작가를 흠모한다며 사랑을 들킨 사람마냥 부끄러워하며 고백하는 그 정도의 사랑 고백은 아니었던 것 같아 약간 속이 상하는 것이다.




덧글

  • 다락방 2016/04/19 08:27 # 삭제 답글

    정영문의 글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 측근님이 쓰신 글을 보니,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가 생각나네요.
    그나저나 성냥..을 주는 모텔이 있군요!
  • 취한배 2016/04/20 22:51 #

    <아프리카 술집...> 토마스가 빌려줘서 저도 읽은 책이 틀림없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술집술집(곰곰...) 모텔모텔은 기념성냥이 제격이죠. 그리고 정영문 작가 음, 멋진 분입니다. (작가(외모)를 꼭 볼 필요는 없지만) 보기만 해도 주눅 드는?
댓글 입력 영역


moon

CURRENT MOON

뉴스타파

알라딘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