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Smoking

명예 - 8점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민음사


단편들인데 장편 같은 영리한 장치. 한 작품 속 배경이었던 인물이 다른 작품에서는 주연이 되거나, 소설 속 소설 등장인물이 소설 속 등장인물과 섞이고, 꿈이었던가 싶었던 일이 현실인가 하면, 소설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인물도, 소설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인물도 등장한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 지쳐 그 사람인 척 해버리는 인물과, 내가 나를 닮은 사람인 척 하다가 정말 내가 아니게 되는 인물도 나온다. 아홉 편에 공히 언급되는, 명성깨나 가진 듯한 이름의 작가마저도 한 편에선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재기가 넘치는 젊은 작품. 장난스럽기도 하고 악몽 같기도 하다. 전체가 200쪽도 안 되니 염려할 정도는 아니겠다만, 등장인물의 이름들을 잘 기억할수록 더 큰 재미가 있겠다. 그러니까, 단편들로 이루어진 공시적 장편. 퍼즐. 모두가 연결된. 아마도 당신과 나처럼. 필연적으로, 때로는 의지적으로. 흐름 상 중요해보이진 않는데 뒤표지에 뽑아놓은 문장을 나도 옮겨 놓는다.


“충고 한 마디 덧붙이죠.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전화하세요. 인생은 아주 빨리 지나갑니다. 그러라고 조그마한 휴대전화기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두들 이 전자용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신사 양반?” (178)


전화했다가 낭패를 보더라도 난몰랑. 하지만 ‘인생은 아주 빨리’ 지나가니까. 무슨 예언자처럼 쓱 나타난 까만 메르세데스의 신비로운 (택시) 운전자의 충고인데, 홀연히 사라지기 전에 이런 말도 덧붙인다.


“나는 아무 말 안 했어요. 설사 했다 하더라도 당신이 스스로 알지 못하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180)


 

덧글

  • 이즌 2016/04/03 23:32 # 답글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뭔가, 끌려...요.
    전화했다가 낭패면 난몰랑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취한배 2016/04/06 21:24 #

    두고두고 볼 책은 아닐지라도 읽는 동안 재미는 있었어요.
    발리면 발리는 대로 감수+안 발리면 감사. 나 따위;; 몰라염.
  • 달을향한사다리 2016/04/04 14:19 # 답글

    전화를 지금 하라는 데 한 표. 늘 적당한 시간을 기다리다가는 놓치기 일쑤죠... 이 책도 위시리스트에.... 위시리스트가 터져도 난몰랑ㅋㅋㅋ
  • 취한배 2016/04/06 21:25 #

    놓쳐서 좋을지, 나쁠지는 정말 알 수 없는 문제이지만; 그렇죠? 사다리 님은 위시리스트에 책 몇 권이나 있어요? 새 책을 넣을 때마다 저는 400여 권으로 계속 정리하고 있답니다. 터질까봐.ㅎㅎ
  • 달을향한사다리 2016/04/07 15:27 #

    저 천 권도 넘어요 ㅋㅋㅋㅋ 위시 리스트는 위시가 아니라 거의 드림 리스트가 되어간달까....ㅋㅋㅋ 그래도 사거나 빌리면 위시 리스트에서 제거하긴 해요. 근데 그 속도가 추가하는 속도를 못 따라가니.. 하아....ㅋㅋㅋ
  • 취한배 2016/04/11 11:50 #

    천 권@@; 그럴 줄 알았어요, 사다리 님. 저는 채우는 것보다 없애는 것에 더 치중하는데,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하기도 하고 그래요. 죽을 때까지 이러겠죠, 우리?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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