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타임슬립 Smoking

화성의 타임슬립 - 8점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마션> 아니다. 필립 K. 딕의 화성, <마션 타임슬립>이다. 1964년에 쓰인, 우리에겐 과거가 된 미래 1994년 화성. 딕의 ‘약빨’이 물씬 느껴진다. 배경은 화성인데 지금-여기 같다. 현대 지구인이 느낄 법한 불안, 권태, 더 나아가 신경증, 분열증, 자폐증. 그리고 타인을 딛고 올라서려는 출세욕, 물건과 음식에 대한 탐욕, 장애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이나 원주민, 조금 다르게 사는 사람 등을 배제하려는 실용-편의주의가 그대로 식민된 화성이다.


잭의 인생에는 별다른 목적이 없었다. 과거 14개월 동안 그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살아왔다. 거대한 신축 조합 주택 건물에서 아파트를 하나 확보한다는 목적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직장에서 그의 업무 실적은 점점 하향세를 그리고 있었다. 이것이 최초의 징후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가장 불길했다. 잭이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128)


자폐증을, 시간을 다른 속도로 경험하는 것으로 상정한 이론이 무척 멋지고, 거기에 머물지 않고 실제 ‘타임 슬립’을 가능케도 한다는 면에서 자유로워 좋다. 어떻게 보면 화끈하다고 할까. 시간감각의 교란이라는 시간이론을 갖고 온 만큼 서술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반복과 변주, 같은 시간을 다시 겪는 형식으로 똑같은 문단을 반복하는 장치 또한 어울렸다. 어니가 좋아하는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의 반복과 변주만큼이나.


광기란 무엇일까? 잭은 생각했다. 그에게 광기란 어딘가에서 만프레드를 잃어버리고, 어떻게 언제 그랬는지를 기억 못하는 일이었다. (…) 광기란 자기 삶의 정경이 어쨌는지 일일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328)


내 만취(타임슬립?)와 어쩜 이렇게 닮았는지, 뜨끔. 저런 적 많았다. 재구성하고 사과하고 안도하고. 합법적인 도취, 알코올 상용자로서 광기를 좀 알 것만 같아서 필립 K. 딕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비판을 넘어 상상의 영역을 넓혀주는 ‘공상’ 과학 소설은 언제나 옳다. 잠깐씩 등장하는 환각, 환시의 장면들은 섬뜩하게 묘사되어 마치 영화를 본 듯한 감상까지도 남는다.

어니에게는 모차르트 40번이고 내게는 41번인데. 그건 우디 앨런과 같다. 영화 <맨해튼>에서, 인생이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들 중 하나로 언급되는 영광을 차지했던. <화성의 타임슬립>과 어쩌면 가장 어울리지 않을 이름 우디 앨런을 떠올린 건 모차르트 탓이다. 나는 41번, 주피터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건 두 작품이 같다. 만프레드의 타임슬립과 트레이시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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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6/02/28 07:54 # 삭제 답글

    이거슨 포 겨냥 리뷰 ㅠㅠㅠ
    진짜 약에 함께 취해 읽는 기분, 자폐아의 시간 모두 너무 즐거운 독서였어요. 아직 결말을 못봤는데... 여기까지 읽으려고 가져온 소중한 책이었음에도 불구, 순간의 짧은 판단으로 지인에게 선물해버리고 말았지 뭐예요. 더군다나 그 지인은 이 책을 안좋아할게 뻔했는데 말이죠. 특히 외국에서의 책 선물은.. 나는 엄청난 마음을 담아 주는 건데 받는 사람은 그저 그런 뭐, 주는만큼 못받는 그런 경향이 더 잦은 것 같아요. ㅠ
    여튼 포겨냥 리뷰 잘 겨냥 받았습니다. 행복했어요.
  • 취한배 2016/02/29 11:56 #

    결말을 못 보셨다니. 아이 이를 어째욤.ㅜㅜ 털썩.
    책선물의 곤란함. 맞아요, 알아요, 포 님. 게다가 반값 전집도 아니고 신간일 때 단권으로 신중히 사셨던 주제에! 흑흑. 다음부턴, 어떤어떤 책 좋아할 사람이 분명하다, 하는 경우에만 해당 책을 선물하는 걸로. 그나저나 다 못 읽으신 이 책은... 음. 다 안 읽었다는 것 때문에 더 잘 기억하시게 될 것 같... 쿨럭.ㅋㅋㅋㅋ+ㅠㅠㅠㅠ
    겨냥 당해주셔서 고마워용.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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