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안쪽 Smoking

바람의 안쪽
밀로라드 파비치 지음, 김지향 옮김/황금가지

 

나는 먹는 동안 마치 하얀 거위처럼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사랑이란 마치 새장 안의 새와 같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만약 매일 그 새에게 배불리 먹이지 않는다면 새는 죽고 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사랑에 대해서,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사랑의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133)


글쎄, 사랑이야기라 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 버지니아 울프 <오를란도>를 떠올리기도 했고 케네스 브레너 <환생>을 생각하기도 했다. 꿈이고 환상이고 환생이기도 한 <바람의 안쪽>. 164쪽밖에 되지 않는 분량인데 600쪽은 읽은 듯한 느낌이다. 이야기가 많고 세월이 길고 시간차로 겹치고 때로는 꿈이고 때로는 역사이고 때로는 신화. 많은 부분 환상이고 시이고 낯섦이고 아름다움이다. 거칠거칠, 오자투성이에 비문인데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옮기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가늠이 되는, 이상한 작품이기에.


한번은 (스승이) 두 연인 헤라와 레안더의 사이에 놓인 장애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
“아마도 그것은 물의 파도가 아니라 시간의 파도일 겁니다. 그것이 헤라와 레안더를 갈라놓고 있는 것이지요. 아마 레안더는 물 사이를 헤엄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사이에서 헤엄 치고 있었던 것일 겁니다.” (51-52)


<하자르(카자르) 사전>에서처럼 남자 편 / 여자 편, 어디부터 읽어도 무방하다는 구성이다. <바람의 안쪽>은 레안더 / 헤라 편. 그리스 전설 속 레안더와 헤라는 바다를 사이에 둔 연인으로 매일 밤 레안더는 헤라의 탑까지 헤엄쳤다. 밀로라드 파비치의 레안더와 헤라는 ‘시간의 파도’ 300년을 사이에 두고 있다. 각각 건축과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았고 ‘레안더와 헤라’ 전설을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운명 같은 것이겠다. 소위 ‘싼’ 점술가가 일러주는 점괘.


두 부류의 점술가가 있지. 비싼 부류 그리고 싼 부류. 하지만 어떤 쪽은 옳고 다른 쪽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말게나. 그런 문제가 아니니 말이야. 한 점술가는 급한 일들, 다른 점술가는 느린 비밀들에 관여한다는 차이일 뿐이니 말일세. (…) 이삼백 년 뒤에 일어날 일들은 누구에게 일어날 것인가? 아무에게도, 심지어 내게도 아니지. 그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15)


독자에게는 상관있겠다. 그러니까, 내 오늘 내일 일상의 삶에서는 결코 겪어볼 수 없는 시간의 파도. 반복과 변주, 원형과 아류의 300년 같은 것. 헤라의 ‘불’로 죽음을 맞는 300년 전 레안더, 레안더의 ‘사브르’로 죽음을 맞는 300년 후의 헤라. ‘결말에서 두 이야기가 만나도록’(일러두기 중) 한 의도가 아름답다. 그렇다고 수학적으로 딱 맞아떨어지거나 일관적인 흐름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164쪽에 담긴 삼백 년의 고독. 내 유일성에 건배를, 당신과의 동질성에 더 큰 건배를. 음... 이상한 책이라고 이미 말했지?

한편, 물을 사이에 둔 연인이라는 점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는 내내 이 노래가 맴돌았는데. 뉴질랜드 호수에서 헤엄쳐 물을 건너는 쪽은 여인, 히네모아다. 마오리 족의 전설, 연가.








덧글

  • 다다 2016/01/31 01:46 # 답글

    취한배님은 책을 골라 읽다가 어라? 이야기가 좀 이상한데...싶어도 끝까지 읽는 분이군요. 저는 끝까지 읽지는 않거든요. 새롭게 안 사실!
  • 취한배 2016/01/31 02:33 #

    음... 넴. (특히 소설은) 끝까지 읽지 않는 경우 꽤 드문 편입니다. 앞에 살짝 맛보고 옆으로 (잠시?) 치워두는 (많은!) 책들을 제외한다면 말이지만요.ㅋㅋ 다다 님은 일단 소설보다는 인문교양철학과학서적을 많이 대하시고, 책은 소장하는 타입이니, 통독하지 않는 습관 완전히 이해되는 걸요.ㅎㅎ
  • 다다 2016/01/31 02:47 #

    새벽에도 깨어있네요. 함께 깨어 있으니 참 좋군요. 저는 사회복지학 중간고사를 두 과목 남겨두고 있습니다. 오늘은 밤 샐 듯요. 요즘 저는 참 행복합니다. 한배님은요?
  • 취한배 2016/02/01 00:33 #

    시험은 잘 보셨어요? 행복하다시니 좋네요. 오늘 밤에도 아마 근무하시지요?ㅎㅎ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여전히 행복한 새벽이기를 바랍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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