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작품들 NoSmoking


미완의 작품들 
이자벨 밀레 지음, 신성림 옮김/마음산책

 

박정대 시인의「리스본 27 체 담배 사용법」에서 ‘이사벨 밀레의 말에 의하면 이렇다’(『삶이라는 직업』205)에 이어지는 두 쪽 반의 문장들은 모두 이 책『미완의 작품들』에서 온 발췌문이다. 조르주 페렉을 시로 그리는 방식으로써 적합한 ‘실험’인 듯도 하다. 나로 말하자면, 박정대 시인의 작품에 이은 독후감으로 이자벨 밀레가 온 건 순전한 우연이다. 어쨌거나. 옮긴이로부터 오래전에 받아두었던 멋진 이 책이 최근에야 떠올랐는데 어쩌면 나는 옛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추위 때문에, 아마도.


예술가 또는 예술애호가, 옛 친구들과 함께 향유했던 미술, 조각, 건축, 음악, 소설, 영화 들이다. 창작자가 마지막 사인을 기입하지 못/않은 작품들, 그러니까 미처 ‘완성’되지 못한 미완성품들의 사연이자, 멈춘 그 순간 언저리에 머물던 창작자들 모습이다. 어떤 작품들은 미완성 상태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고 따뜻하게 초대하는 듯도 하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애틋해지기도 하는 게, 옛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싶은데,


미완성 작품은 어떤 면에서 중지된 시간과 창작 행위를 포착하는 일종의 사진을 자처한다. 미완성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결코 미완성이 될 수 없는 사진과 항상 미완성으로 남는 자서전 사이에서 삶을 조명하는 일과도 같다. 그런데 우리네 삶보다 더 미완성인 게 또 어디 있을까? (14, 프롤로그)


그래서인가 보다. 우리 삶과 닮아서. 끝이 이보다 명확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예컨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같은 조각은 세심히 보게 되지 않는 반면 이 뛰어난 조각가가 완성하지 못한 <아틀라스라 불리는 노예> 같은 미완성품은 유심히 보게 된다. 대리석 조각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듯한 형상. 거장의 망치질을 상상해보게 되는 감정이입. 인간미, 따뜻함 같은 거, 그리고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역경, 사연을 떠올려 보게 되기도 하고.


한때 오페라를 열심히 듣기도 했는데 내게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가장 애틋하게 여겨졌던 이유도 다름 아닌 이 ‘미완성’이라는 요소 때문이었다. 투란도트의 과거 사연과 저 유명한 수수께끼 장면, 거뜬하게 답을 내놓은 칼라프가 도리어 투란도트에게 제시하는 질문. 얼음공주가 마음을 열게 되는 사랑이라는 이름. 비극의 여느 여주인공들과 다른 맺음을 보여주고자 한 푸치니의 계획. 3막의 야심찬 피날레를 앞두고 있던, 주인공 둘만 남은 무대, 바로 그 장면에서 말인데, ‘여기에서 푸치니는 펜을 놓았습니다.’




음반에 붙어 있는 해설서에서 본 이 문장이 어찌나 강렬하고 슬펐던지. 게다가 저 문장은 초연의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극장 관객들 앞에서 처음 자신의 목소리로 냈던 발화이기도 하다. 이후 당연히, ‘미완성으로 남은 <투란도트>는 이를 완성하려는 온갖 시도의 문을 열어놓았다.’ (64)


결국 자코모 푸치니는 자신의 <투란도트>를 토스카니니에게 맡김으로써 그 작품을 미래의 모든 음악가에게 맡긴 셈이다. 세대가 거듭 바뀌어도 그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척하는 일없이 자신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묘사한다. (64-65)


<투란도트>가 푸치니의 펜 끝에서 완전무결하게 마무리되었다면 이 작품에 대해 내가 품은 애틋함 따위 없었을 것 같다. 피날레를 앞두고 ‘펜을 놓다’니, 하며 들여다보게 되고 알게 되고 끌리게 되는 매력 말이다. 미완의 작품들이 품은 초대의 힘이랄까. 미지의, 미래의 향유자들에게 열어놓은 틈인 듯 내게는 느껴지기도 한다. 그 틈을 직접, 현재진행형으로 체험할 수 있는 건축물 얘기도 이어서 할 수 있겠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우리는 두 번 다시 똑같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방문할 수 없다.’(167)


완성/미완성의 경계가 그의 붓놀림만큼이나 흐릿한 화가, 터너도 있다. ‘터너는 파도를 다루지도, 폭풍을 묘사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관람객의 시선이 움직임 속으로 들어가는 시각적인 경험을 창조했다.’(211) 또한 “영화는 끝나 있었는데 우리가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234)고 하는 장 르누아르의 단편영화,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잃어버린 앨범,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영화, 발자크의『인간희극』, 트루먼 커포티의 야심작 『응답받은 기도』의 사연도 소개된다. ‘커포티가 너무도 분명하게 그 소설을 구상한 데다 걸작을 원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알코올 중독성 망상발작을 두 차례 겪는 동안 자기가 그 글을 썼다고 믿어버렸다’(116)는 게 가장 그럴 법한 설명이라는.


그리고 마지막 장이 바로 ‘미완을 향한 글쓰기.’ 박정대 시인이 발췌, 시로 추모하였던 조르주 페렉이다. 사후, 자크 루보를 비롯한 친구들이 정리하여 출간한 수수께끼 같은 작품『‘53일’』. 실험적 글쓰기로 워낙 유명한 작가여서 그의 미완성조차 하나의 실험으로 여겨질 법도 한, 매우 ‘페렉스러운’ 소설. 페렉이 존경하였고 『‘53일’』로 오마주를 바쳤던 스탕달 『파르마의 수도원』이 우리가 페렉에게 다가가는, 페렉이 우리에게 열어놓은 틈이지 싶다. 옛 친구들을 만나 따뜻해진 마음만으로는 섭섭할까봐, 스탕달+페렉의 암호 하나를 적어두고 끝맺자.


‘R은 R의 L을 P하는 M이다.’ (271)


1. 소설, 그것은 길을 따라 산책하는 거울이다. (271)
2. 익살꾼은 연습 다음 날 모습을 나타내는 놈이다. (또 271)
3. 혁명가는 이성의 사치를 누리는 신사다. (역시 271)
4. 이성은 현실의 달을 잃을 수도 있는 기계다. (취한배 작문. 하고 보니 좀 멋진데?)




덧글

  • 다다 2016/01/25 19:20 # 답글

    우와...
    한배님 엄청 인텔리 같아요. 사진 속 책은 불어인가요?
    옮긴이도 옛 지인이신 듯 한데, 그리움이 되었군요.
    미완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 몇몇은 낯이 익네요. ㅋㅋ
  • 취한배 2016/01/25 20:23 #

    인텔리 같았어요?ㅋㅋㅋㅋ아입니다~ 사진 속 책은 CD에 딸려 있던 북크릿(?)이고, 불어 맞습니담. 읽었던 당시 형광펜 자국이 그대로 있어서 더 새록새록. 낯이 익은 인물들이 있으니 다다 님도 재미있게 보실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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