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Smoking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비채


너는 평생을 한 동네에서 살았다. 너의 유년, 소년, 청년, 지금의 장년까지. 하루는 산책길에 유년 시절 친구의 집을 사진 찍어 현재 외국에 사는 그 친구에게 카톡으로 보냈던 일화를 내게 들려주었다.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그와 비슷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집의 현재 모습으로부터 구성되는 ‘나’의 유년 시절과 가족과 성장과 죽음들.


너의 유년 시절을 읽은 적 있다. 알랭 레몽을 만나기 전이었고, <하루하루>를 그때 내가 알고 있었더라면 네 소설이 <하루하루>와 닮았어, 라고 전했을 것이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네 소설과 닮았어, 라고 쓴다. 북적이는 12명의 가난한 가족, 전쟁으로 인한 이사, 배경이 프랑스라는 건 다르지만 사랑했던 어머니, 알지 못했던 아버지, 둘 사이의 불화, 아버지의 음주, 몇 년의 시차를 둔 그들 각각의 죽음, 동생과 나의 성장, 유년기를 그렇게 떠나보낸 아련함은 놀라울 정도로 같았다.


죽은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고’(148) 싶은 마음도, 사랑하고자 했으나 알지 못했던 아버지, 그 사람이 얼마나 그리운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고 화해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느낌까지도 같다. 알랭 레몽은 죽은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이 작품을 썼고 너도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하루>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모르탱의 집은 허물어졌다. 르 테이욀의 집은 허물어졌다. 트랑의 집은 팔려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누이가 죽었다. 나는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 (148)


이어지는 작품,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를 위해서는 내 아버지 얘기를 하겠다. 어머니와의 결혼 전 젊은 총각 아버지 사진을 본 적 있다. 늘씬하게 팔다리가 탄탄하고 잘 생긴, 여자고등학교 인기 만점 체육 선생님. 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아버지. 알랭 레몽이 뒤늦게 발견한 스무 살 아버지의 편지 뭉치들이란 것은, 내가 보았던 ‘장차 나의 아버지가 될 한 젊은이’(160)의 사진 같은 것이겠다. 말하자면 <하루하루>의 프리퀄 격일 터인데, 알랭 레몽은 자신의 청년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한 젊은이>를 채운다.


너와는 다르게, 또한 알랭 레몽과도 다르게, 나는 살아 있는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 한때 사랑했던 적 물론 있다. 내 머리는 커지는데, 커지지 않는 아버지는 사랑하기 힘들었다. 살아 있는 아버지와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 내 유년 시절, 연필을 가지런히 깎아 필통에 채워주던 모습이나, 까슬까슬했던 수염의 촉감에서 멈춰야만 그립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게 아버지라는 사실이 아프다. 알랭 레몽의 유년과 청년 이야기, ‘그것은 곧 우리 집안의 이야기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다.’ (166)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의 유년 시절이 소설로 모양 갖춰지면 너의 청년 시절을 소설로 쓰는, 중년의 너를 기다려 봄직하다는 생각까지, 알랭 레몽을 처음 만나며 나는 너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작은 실수를 발견했다. 오역이랄 것까지도 아니고 오타일 텐데, 헛, 잠시 공포물로 변하는 순간.


지금 내게는 아녜스 누나, 형 자크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찍은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누가 찍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29)


Chaque jour est un adieu, 매일이 이별, 매순간이 영원한 안녕,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차창 밖 풍경이 차례차례 뒤로 밀려나가며 저기 먼 어딘가에 쌓여 있을 것만 같고, 알랭 레몽의 그 어딘가는 이 책이 됐다. 맞춤한 표지 사진 때문에 기차 안에서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따뜻한 남쪽 친구를 만나고 왔다. 줄여서 남친, 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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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6/01/13 17:59 # 답글

    취한배님에게는 더욱 의미있게 읽혔겠네요... 창문 하나 없는 프로젝트룸에서 저 사진을 보고 있자니, 책이 호강하는구나, 싶습니당 ㅋㅋㅋ
  • 취한배 2016/01/16 01:34 #

    네. 좀 놀라기도 했고 좋기도 했어요. 창문 하나 없는 프로젝트룸;ㅜㅜ 어째, 이후 바람은 쐬셨겠지요? 힝. 이 책 사면서 사다리 님께 땡투 할 수 없어 안타까웠어요. 사다리 님 덕분에 읽게 된 책인뎅!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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