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댓 이즈 Smoking

올 댓 이즈 - 8점
제임스 설터 지음, 김영준 옮김/마음산책
 

작년 타계한 제임스 설터의 마지막 작품, 새해 첫 책. 가족, 일, 결혼, 사랑, 배신, 노인들의 죽음, 늙음. 그러니까, 인생. 작년 최고 멋진 발견이었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 일견 비슷한 감상이 남는다. 초점이 여러 인물들로 분산되어 산만해 보일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 삶의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거나 아프거나 행복하거나 슬펐던 관계들, 순간들. ‘편집된’(옮긴이 표현) 인생. 어떤 기교도 없이 그냥 덤덤하게 보여준다. 작품 속 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잠시 언급하는 작품론이 설터의 글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근데 인물의 생각이나 느낌을 너무 많이 알려주는 작가는 싫더라고.” 그가 말했다. “그냥 내가 보고 듣고 스스로 판단하고 싶어. 일단 있는 그대로. 그래서 난 대화가 좋아. 인물이 하는 말을 들으면 다 알게 되니까. 혹시 존 오하라 좋아해?” (45-46)


존 오하라 모른다. 어쨌든.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느낌을 시시콜콜 설명하고 이 사람은 원래 이래, 라고 지정해주는 글은 나도 싫어한다. 독자가 판단할 수 있게 행동이나 버릇, 말투 같은 빌미가 툭툭 주어지는 게 좋지. 내가 현실에서 상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이런이런 사람이에요, 구구절절 설명하려 드는 사람 질색이다. 직접 겪고 있는 상대에게는 크게 필요 없는, 어쩌면 위선이나 위악에 가까울 구구절절. 그냥 상대에게 ‘나’를 ‘행’하면 되는 것이고 거기에서 ‘나’에 대한 그림이 상대에게 그려지게 마련이다. 내가 직접 그리는 나, 별로 믿지 않는다. 설명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를 보는 터라 그렇고, 일치하면 동어반복이라 싫다.


너를 충분히 읽었고, 네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빤히 보고 있는데, ‘난 이런 사람’이라며 설명하려 들 때 아, 됐다, 싶었다. 사랑한다는 선언이 있었고 한편이라 여겨져서 만났는데 쓱 내려다보며, 감히 나를 평가하기에 아, 됐다, 싶었다. 글이 그렇게 가벼울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어찌 안 그렇겠나, 삶이 이미 그러한데. 편집하고 위장하고 꾸며진 삶-글이야. 가볍고 부서질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지나간 것들은 그토록 무겁고 엄중해져버리는,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어 버린 ‘이 모든 것All That Is.’ 바보 같아서 곧잘 놓쳐버리는 ‘바로 그 순간’과, 놓치지 않으려고 잡아보면 바보 같은 순간들, 이런 것들이 쌓인 게 삶인가 보다. 아옹다옹해봐야 소용없다, 어쩌면. 그러나 아옹다옹해야한다. 그게 또한 삶이니까. 그게 너를 만드니까.


흥분하지 않은 평상시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바다에서 나와 그녀 앞에 서 있는 동안 그는 말할 뻔했다. 그녀 옆에 무릎 꿇고 말할 뻔했다.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결혼해달라고 말할 뻔했다. 바로 그 순간이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419-420)

 




덧글

  • 다다 2016/01/02 13:42 # 답글

    말이 삶보다 앞서면 삶이 상하고, 글은 삶을 미화하기 마련이라서
    제 삶의 부피만큼만 말하자 싶지만 어느 순간 화려한 글이나 말로
    젠 체하며 가난한 삶을 대신하려 들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막 설명하려 들고...,
    저는 늘 이 부분을 알아차리고는 있습니다.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정말 별 거 아니란 것도 알고 있어요.
    악의가 미만한 세상을 개선하는 것도 응당 선'언'이나 선'의'가 아니라
    선한 '행동'이지요..
  • 취한배 2016/01/02 18:46 #

    감정적인 글 읽어주시고 정성덧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동이요, 네. 사랑을 '행'하려 했는데 난데없이 제가 '평'되고 있으니 그 배신감이 충격적이었어요. 글로 그만치나 친해졌던 게 다 어디 갔나 싶고, 말 그대로 '처음 뵙겠습니다'가 된 거죠. '살보다 글을 좋아한다'나 '글에 반한다' 이런 거, 이제 폐기하려고요. 글 따위에 반하다니, 한낱 위장과 분칠에. '문중' 뜬구름 이제 그만 할래요. 글 이제 그만 믿을래요.
    술 취한 거 티 나나요...? 건배.
  • 2016/01/02 19:0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1/02 20: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1/02 20: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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