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의 열풍 Smoking

자메이카의 열풍
리처드 휴스 지음, 김석희 옮김/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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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잔잔할 때는 그렇게 부드럽고 희박했다.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감지할 수도 없는 움직임이 공기를 그렇게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온순한 암사슴 같은 대기 현상이 간밤에 호랑이처럼 빠르고 아랍 전설에 나오는 커다란 괴조와 같은 힘으로 뚱보 벳시를 붙잡아,  (…) 내던졌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49-50)


바람은 불지 않을 때 뭘 할까, 라는 문장을 어디에서 봤더라. 평소에는 잔잔하고 부드럽고 희박하기만 한 공기의 변덕, ‘열풍High Wind’이다. 지역상 ‘허리케인’이겠다. 그 위력을 한 번 겪은 후 식민지를 떠나 영국으로 돌려보내지는 꼬맹이들. 19세기이니 배를 탔겠고, 항해 동안에도 아이들은 크기 마련이겠고, 소설이니 그 항해가 순조로울 리 없어 해적을 만났겠고, 정작 무서운 건 해적이 아니라…… 


아이들은 남들이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였고, 나이에 따라 그 말을 믿었다. 아이들은 아직 거기에 반박할 만한 분별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남들의 말과 자신의 기억을 쉽게 뒤섞었다. 때로는 자신의 기억을 아예 쫓아내 버리기도 했다. (279)


‘『파리대왕』에 비견하는 전설적인 고전!’(뒤표지)이라는 카피만으로도 짐작 가능한 분위기. 『파리대왕』이 1954년, 이 작품이 1929년. 『파리대왕』보다 더 건조하고 더 이상하고 더 껄끄럽다. 어른들이 보기에 그러리라는 의미다. 한때는 아이였으면서, 그래서 아이들이 어김없이 순수하고 티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들에게 ‘순진무구함’을 기대하고 종용하는 건 위선 아닌가. 솔직히 말해, 어른들이 말하는 동심(童心)은 무식함과 자기중심성을 좋게 일컫는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킹스맨>을 보고 나오면서 조박사가 했던 말이지 싶은데,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동물이나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없으니 마음 푹 놓고 봤어.’ 할리우드 영화, 기본적으로 판타지라는 얘기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아이들이 무수하게 살해당하고, 학대 받는 동물들이 숱하며, 장애인들이 마냥 착하기만 한 것 또한 아니고 노인들이 모두 현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음 푹 놓고 보지 마셔라, 이 소설은 핍진하다. 사실보다는 개연성에 관심을 갖는 게 변호사라면, ‘사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소설가’(294)이기에. ‘열풍’을 읽고 외출했다가 ‘한파’에 기겁하고 들어온 일요일 밤, 레게와는 거리가 먼 자메이카의 열풍일지라도, 선곡은. 


“절대로 아이들을 믿으면 안 돼. 아이들은 자네가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걸 말하지. 그다음에는 상대편 변호사가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말할 걸세. 상대편 변호사의 얼굴이 마음에 들면 말일세.” (295)







덧글

  • 2015/12/28 04:03 # 삭제 답글

    가끔 친한친구 이름이 뭐니, 걔가 왜 좋으니 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볼 때가 있는데 90프로 예뻐서 좋다고.. ㅎㅎㅎ
    기본적으로 유미주의자라 저도 예쁜 애들을 더 좋아하긴 합니다. 그게 뭐 어때서?!
    대학 다닐때 단편소설을 하나 쓴 적이 있는데요. 과제 때문에 ㅎㅎ 그 때 다뤘던 주제가 아이들의 외모지상주의였어요. 은혜 갚은 까치를 재각색 했는데 까치는 예쁘고 뱀은 못생겨서 모든 일의 발단이 되었다, 뭐 이런. ㅎㅎ 국문과 학생은 이런게 과제입니더..
    애들이랑 같이 일은 할 수 있는데 친하게는 못지내겠어요. 직장 동료의 느낌 이상은 안감. 그래서 잘해줄 수는 있는데 좋아하진 못해요.
  • 취한배 2015/12/28 12:45 #

    엇, 포 님 방금 세 배는 더 멋있어 짐. (왠진 모르겠는데 국문과 출신에 존경심+로망 있슴미다;;) 아이고 좋아라.ㅋㅋ
    아이들 진짜 짤없죠. 아이들이랑 티격태격하고 있는 저나 어른들 모습 보면 완전히 아이가 되어 있는 황당한 시추에이션, 아시는지.ㅎㅎ 그러나 무엇보다 유아(幼兒)적인 유아(唯我)론을 그대로 간직한 채 어른이 된 인간들을 저는 그 무엇보다 못 견디는 것 같아요. 온리 미, 오직 나, 라는 ‘디폴트 세팅’ 장착한 사람들이요. 답이 없어요.
    직업상 인물사진을 꽤 오랫동안 찍었어요. 조각처럼 예쁜 얼굴은 아무렇게나 찍어도, 그러니까 발로 찍어도 그림이 나와요. 그러나 ‘객관적으로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을 얼굴은 잘 관찰하게 되더군요. 표정이 변하는 모습이나 목소리의 울림, 인터뷰를 하는 자세 같은 것에서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생기면 얼굴에서 매력을 결국 찾게 되더라고요. 나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랄까, 그런 거. ‘주관적인’ 미적 판단이 감동이나 깊이 있는 사진을 만들더라는 게 ‘유미주의’와 관련한 제 의견입니다.
  • 다다 2015/12/28 08:47 # 답글

    동심이 아름답고 순수하다는 건 가장 널리 퍼져있는 '성공적인 거짓말'에 속하죠. 오, 밥 말리. 잘 익은 대마한 대 말아 피우고 싶네요. love n peace!
  • 취한배 2015/12/28 12:46 #

    다른 말로, 아름답고 순수하라고 세뇌시키는... 잘 익은 대마.ㅋㅋㅋ 흔쾌히 불법을 저지를 순 없어서, 언제 네덜란드나 그런 데서 한번 씁;; 예전에 이상은 씨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할 때 끝 인사가 늘 peace!였던 게 떠오르네요. 평화! 이러면 좀 웃긴데 말이죠.ㅎㅎ 넹, 러브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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