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우 시를 노래하다 NoSmoking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 1, 2 
백창우 지음/우리교육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 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 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끌어나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지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고정희 「사십대」)



4년쯤 전. 이 년에 걸쳐 생일마다 하나씩 받은 백창우 시-노래집. 다시 듣는다. 저녁 파티를 위해 청소를 하다 말고 앉았다. ‘요절시인’으로 묶인 고정희, 이 시가 수록되어 있지는 않다만. 사십대에 합류하는 이들 웰컴. 사십대 별것 아니고, 나이를 제목에 달고 있는 시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예외랄까, 이 시는. 고정희이니까.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서서 ‘매달리지 않는’ 나날. ‘와 있는 인연들’과의 파티다. 오늘 모임이 없었다면 이랬을 건데.

 

자고 나서 보아 해도
잘 일밖에 다시 없어

자고 도로 자고
자다가 눈떠 보면

생시가 꿈인 양 하이
깨는 듯이 도로 자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 1』132, 조운,「XX월」전문)



‘도로 자’ 숙취. 그리고 이러기도 했을 텐데,


오 개새끼
못 잊어!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 2』74, 최승자, 「Y를 위하여」에서)


오, 네게 하는 말은 아니다. 모든 Y들조차 ‘어여쁘기를’ 바랄 수 있는 이랑. 비밀인데, 어제는 ‘땅바닥에 침을 퉤,’ 뱉어보았다. 어떤 기분인가 싶어서. 기분 좋더라. 청소 못 마쳤다. 파티는 나가서 하기로. 저질 체력 사십대이니 봐줘라, ‘와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시여. 몸무게를 5킬로그램 잃고 나이와 같은 무게가 되어 ‘취한배’로 돌아왔다. 건배.







덧글

  • 2015/12/16 19:58 # 삭제 답글

    뭔가 좋아서 팔짝팔짝!
    내년에 오실 줄 알았는데 송년 모임 하시는가 보군요. 히히 오랜만에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그나저나 나이와 같은 무게라니 기쁘지만은 않네요. ㅠㅠ 안주 잘 챙겨 드시고 얼른 몸무게 회복하시길 ㅠㅠ
  • 2015/12/16 19:59 # 삭제 답글

    시는 아직 제가 언급할 나이는 아닌 것 같아 조용히 언급하지 않고 지나갑니다. ㅎㅎ
  • 취한배 2015/12/17 15:35 #

    팔짝팔짝! 땡스요.ㅋㅋ 넹. 송년모임들이니 그냥 내년인 셈 치며 복귀. 이 좋은 걸.ㅠㅠ
    몸무게도 잽싸게 회복할게요. 뭔가 여리여리한 게 스스로 재섭서...
    시, 쓸쓸하고 좋으시면서! 귀염둥젊은쟁이 포 님, 희희.
  • 다다 2015/12/16 21:05 # 답글

    취한배로 돌아온 걸 축하드려요. 고정희 최승자 백창우..다들 반가운 이름이네요. 정신이 휑한 날, 땅끝으로 훌쩍 떠났던 스물 아홉 해의 겨울이 생각나요. 남도땅을 여행하다 고정희 시인 흔적도 만났더랬지요. 고향 마을 입구 큰 고목 곁에 서서 누구를 그토록 기다렸는지 이젠 기억이 희미하네요.

    최승자 시인 근황이 궁금해요. 몇년 전 고시원을 전전하고 심신쇠약과 정신분열증을 앓는다 들었는데...저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지만 병은 낫는 게 아니라 그저 조금씩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지는 일이구나 여긴답니다. 어디에 계시든, 따뜻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백창우 시인은 고등학교 때 딴따라하면서 먼 발치에서 뵙곤 했던 분이라...참 좋아했지요. 소년 같았어요.

    저녁부터 눈이 나리네요. 맥주 말고 소주 마시고 싶어요. 한 넉잔은 쓰디쓴데, 다섯잔부터 술에 발려서 고통과 환희의 영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매력주 말입죠. 마시다가 영원히 잠들어도 좋으련만....계속해서 눈발이 나리네요. 푹푹 쌓일지도 모르겠어요. 건배! ^^
  • 취한배 2015/12/17 15:40 #

    고마워요. 스물아홉 살에 고정희 시인 흔적을 만나셨다니 다다 님 문청이셨어! 다다 님 글을 보니까 저도 땅끝마을로 훌쩍 떠나고 싶어지네요. 여행이란 걸 안 해본 지 어언... (자동차를 처분하고 그리 된 것 같은데, 계산도 안 됩니다.ㅜㅜ)
    최승자 시인은 <물 위에 씌어진>에서 이미 그런 내용을 보았는데, 정말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다 님 그러시군요. 약물 처방 꾸준히 받고 계신가요? 말씀처럼 병과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게 활력이고 건강인 것 같아요. 모쪼록 활력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백창우 님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저도 예전 보도블럭 좀 깨고 돌아다니던 시절도 떠오르고 그러더라고요. 꼭 그때 들은 음악들도 아닌데 말이지요.
    어디 계시기에 눈을 보셨어요? 서울에서 저는 못 보았네요. 눈 내릴 때 소주 좋죠!! 매력주. 마시다가 영원히 잠드시면 안 됩니다 다다 님.ㅜㅜ 댓글도 답글도 달아주셔야죠!ㅋㅋ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크, 백석. 건배!
  • 다다 2015/12/17 17:50 #

    ㅋㅋㅋㅋㅋ문청 아니에요. (손사래~) 그냥 이것저것 관심이 잡다할 뿐이에요. 네, 저는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구 있구요. 약도 잘 먹구 있구요. 지금은 좋아요. 혹시 '부곡화와이'라고 아시나요? 그 동네 살아요. 서울에서 멀죠. 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서울에 살죠?
  • 취한배 2015/12/19 00:29 #

    '잡다한' 관심 중 몇몇이 저와 겹쳐서 좋답니다. 다다 님 이글루에서 정신분열증 관련 책들 쌓아놓으신 거 본 기억이 나네요. 약 잘 드시고 저와 건배도 종종 하시고 건강하십시다.ㅎㅎ 부곡하와이 예전에 놀러간 적 있는 것 같아요! 다다 님이 좋아하시는 사람들은 다 서울에 산다-취한배는 서울에 산다-다다 님은 취한배를 좋아하신다. (ㅋㅋㅋ+휘리릭-)
  • 다다 2015/12/19 01:23 #

    네. 취한배님 좋아합니다. (부끄부끄) 제 여자사람 친구는 취한배님 블로그 보고 너무 좋다고 저보고 친하게 지내라고 하네요. ㅋㅋㅋ
  • 취한배 2015/12/19 20:17 #

    그 친구분은 왜... 직접 친해지러 오시지 않고;;ㅎㅎ 어쨌거나, 훌륭하신 친구분! ㅋㅋㅋ
  • 측근 2015/12/17 07:54 # 삭제 답글

    아, 할 말이 많습니다, 측근님.

    1. 일단 저 시는 저에게 들려주는 시 같아요. 네, 저 이제 사십대로 갑니다. 보름이 채 안남았죠.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기 보다는 있는 인연을 소중히 보듬어가는 일, 네, 새겨 듣겠습니다.

    2. 그렇지만 저는 제 나이와 같은 몸무게라니, 아주아주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 가능하겠어요.

    3. 무엇보다 '취한'배로 이동하셨다니, 환영입니다. 그간 뜸했던 넷상에서의 '건배'를 이제 외칠 수 있겠네요. 씐나요!
    그나저나 오랜만의 음주였을텐데, 지금쯤 몸은 어떠세요? 취한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요.
  • 취한배 2015/12/17 15:42 #

    1. 워워, 우리 만 나이로 합시다!ㅎㅎ 우리도 '와 있는' 인연. 그죠? 측근님짱.
    2. 60세 정도로 할까요? 살 빠지니 기력이 달려서 힘들어요. 술도 많이 못 마시는 것 같공. (한심...함미까;;)
    3. 희희. 이상한 우울증 같은 금주시절을 보내고 활력 회복. 씐나해주셔서 고마워욘. 숙취는 감수해야할 동반자. 라면 해장하고 몸의 놀라운 회복력에 지금 좀 감탄하고 있는 중이에요. 취한 소식 개봉박두.
  • 측근 2015/12/17 16:57 # 삭제 답글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정말 아니지만!! 어쩌고보니 제가 취한배님 금주중에는 신나게 댓글을 달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네요? 하핫;;
  • 2015/12/17 19:05 # 삭제

    진짜 너무 뜸하셨어요..
  • 취한배 2015/12/19 00:30 #

    금주 중에는 포스팅이 지질해서이지요. (음주 글이 지질하지 않다는 말 아니고요;) 금주 전후 저도 온라인 마실 잘 안 다녀서 할 말 없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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