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바이야트, 토성의 고리 NoSmoking

루바이야트 - 10점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지음/민음사

 

장막 뒤에 숨어 있는 <나 속의 너>
그것을 밝혀볼 등잔을 찾아
두 손 들어 어둠 속을 헤매었으나
밖에서 들리는 그 한마디는 「눈먼 <너 속의 나>」

(『루바이야트』56쪽, 34번 루바이)


그리워서 뒤적여본다. 포도주 갈급증이 온 건 아니다. ‘비대면적 긴장의 양식’(김영민), 포도주와 나 사이 그리움이다. 진정시키기도 하고 흥분시키기도 했던 ‘나 속의 너.’ 온전하고 풍족하고 결핍이 없는 ‘너 속의 나.’ 11-12세기에 걸쳐 살았던 오마르 카이얌이 쓴 페르시아 시이건만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탁월한 영역(英譯)으로 거의 영국문학 유산으로 간주되는 시집이다. 그 탓인지 민음사 시인선 표지 저자 이름 칸에도 ‘피츠제럴드’라고 당당히 표기되어 있다.


기우에 덧붙이자면『위대한 개츠비』의 피츠제럴드 아니다. 19세기 영국의 은둔 학자이고 그 누구보다 고독을 즐길 줄 알았던 인물이다. 무얼 하면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나름으로 사랑하면서. 실용주의나 ‘성과주의’적으로 보자면 불모의 연구이고 불모의 사랑일 터, 그래서 내게는 더욱 소중한, ‘불모의 위대한 매력 서랍’에 분류되어 있는 피츠제럴드다. 저 서랍을 살짝 열자면, 로버트 버튼(버턴) 같은 이름이 튀어나오기도 할 거다. 역시, 평생 책을 읽고 단 한 권의 저서 『우울증의 해부』를 남긴 사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한때 남편 리처드 버튼이 그 이름을 가져와 예명으로 갖기도 한. 밥 딜런이 시인 딜런 토마스의 이름을 취했듯이.


서랍 닫고, 피츠제럴드로 돌아온다. 이 매력적인 인물을 더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계기가 물론 있다. W. G. 제발트가 『토성의 고리』(창비, 2011)에서 애틋하게 그려 보여 준 것이다. 우수에 가득 차 있으며 이토록 깊고 넓을 수 있는가, 싶었던 제발트의 여행기 『토성의 고리』8장이 그것이다.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영국 우드브리지를 둘러보며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의 삶.



토성의 고리 - 10점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창비

 

은신처에서 세비녜 부인의 편지를 탐독하고 세비녜 부인을 ‘살아 있는 친구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인물’(『토성의 고리』234)로 여기며 주석을 달고 연구, ‘세비녜 백과사전’을 시도했고 그의 여러 계획들과 마찬가지로 미완으로 남았다. 브라운이라는 남자를 깊이 사랑했고 잃었다. 친구들과의 편지글들은 남아 있는 모양인데, ‘그가 파란 악마라고 부르던 멜랑꼴리가 드물지 않게 그를 덮치기는 했지만, 그의 편지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이런 고독 속에서도 놀랍도록 잘 지냈다.’ (『토성의 고리』241)
 

피츠제럴드가 죽기 전에 직접 완결하고 출판한 유일한 책은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를 멋지게 번역한 것이었는데, 그는 팔백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하이얌이 자신과 영혼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토성의 고리』234-235)


구백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카이얌이 나와 영혼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느낀다. 피츠제럴드 덕이다. 백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피츠제럴드가 나와 영혼이 가까운 사람이라고 느낀다. 『루바이야트』덕이다. 약간의 허무주의,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필멸의 존재가 취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낙관적인, 짧은 삶을 손아귀에 꽉 쥐는 것 같은, 에피쿠로스주의. 그리운 너, 내년에는 대면하자, 우리.


한 가닥 진실에 사랑이 불붙거나
분노로 이 몸을 불사르거나,
알고 있노라, 술집에서 문득 본 진실이
사원에서 잃은 진실보다 귀하단 것을

(『루바이야트』112쪽, 77번 루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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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5/12/07 16:30 # 답글

    제발트의 책이 위시리스트에 있은 지 몇 년인지... 근데 취한배님보다 늦게 읽어서 다행이에요^^ 이렇게 멋진 리뷰를 읽고 나서 읽을 수 있다는게....
  • 안취한배 2015/12/08 13:04 #

    제발트는 막상 읽으면 좋은데 어쩐지 ‘각오’를 하고 손에 들어야할 것 같은 느낌이 제게도 없지 않아요. 작품은 다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쉽게 펼쳐지지는 않네요. 이 책은 예전에 읽었던 거라 되새김질 한 경우. 아무튼 제발트는 정말 멋져요. 사다리 님도 꼭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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