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생트 Smoking

이아생트 - 10점
앙리 보스코 지음, 최애리 옮김/워크룸프레스(Workroom)

 

취해 있었던 걸까. 나는 소설 속의 ‘나’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꿈을 꾼 듯도 하다. 어느 겨울 까맣고 추운 밤 창가. 눈 덮인 고원 너머 보이는 외딴집의 등불을 나도 사랑하였다. 하염없이 등불을 보다가 책상 위에 놓인 공책에 열심히 독후감을 쓰기도 했다. 새벽과 함께 공책은 사라지고 손에는 <이아생트>가 들려 있었다. 예의 흘림체로 줄줄줄 쓴 기억만 남은 긴 글 중에는 이런 문구들이 있었지 싶다. 내면으로의 침잠, 기억과 꿈의 만남, 아름다움, 아름다움.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에 이르렀었다. 나는 나 자신의 흔적들을 찾아 헤매었다. 때로 나는 나에 대해 그저 오래전에 소문을 들었을 뿐인 듯도 했다. 미지의 누군가가 나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하도 오래전이라 환영(幻影)들밖에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안개 속에 쉬이 지워져갔다. 나는 나를 소문으로밖에는 알지 못했다. (25)


꿈에서 최승자의 시집을 찾아보기도 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최승자, ‘일찌기 나는’ 중) 이 문장을 들고 고원을 걸었다. 늪에도 빠졌다가 저 등불의 방에서 보살핌도 받았다가 먼 산길을 걸어 누군가를 찾아 헤매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미지의 인물, 내가 바라보던 바로 그 영혼. 꿈이어도 기억이어도 소문이어도 좋았다. <이아생트>를 읽고 취중인 듯 꿈인 듯 그것을 겪었다.

앙리 보스코가 언어로 이루어낸 건축물은 그 안에서 내가 살게 하는 꿈이다. 황홀한 꿈 끄트머리 조금이라도 기억하기 위해 침대 옆 노트에 괴발개발 말도 되지 않는 힌트를 기록하는 것 마냥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꿈에 썼던 긴 독후감을 찾기 전까지는 할 수 없다. ‘건조하고 진부’할지라도 이렇게 <이아생트>를 기억하기로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를 억지로라도 떠올리기 위해서는 몇몇 의미 있는 사실들, 세심하고 감정 없이 기록한 사실들을 내 바깥에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건조하고 진부한 한 줄의 글귀는, 정열의 외침 이상으로, 우리를 떠나버린 자들을 무로부터 끌어낼 힘을 갖는 것이다. (139)





추석인가? 추석이다. 송편은 없다. 위젯 ‘current moon’이 하늘에서와 마찬가지 실시간으로 둥그레지고 있다.
슈퍼문. 끼욱.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5/10/03 22:44 # 답글

    취한배님의 리뷰도, 인용하신 문장도 아름답네요....
  • 취한배 2015/10/04 00:10 #

    아, 이 책은 정말 아름다워요. 이따위로밖에 독후감을 못 쓰다니, 할 정도로.ㅜㅜ 언젠가 다시 읽고 제대로 쓰고 싶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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