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라르와 엘로이즈 NoSmoking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아벨라르.엘로이즈 지음, 정봉구 옮김/을유문화사


12세기 프랑스 스캔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훗날 루소가 『신(新) 엘로이즈』로 변주해 내어 프랑스문학사에서 내게 더욱 숙제처럼 남아 있던 텍스트, 중세의 편지글이다. 17세 엘로이즈의 교육을 맡게 된 39세 철학자 아벨라르. 그 ‘교육’이 어떠했는지 아벨라르가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책이 펼쳐져 있었지만, 철학 공부보다는 사랑의 이야기가 더 많았고, 학문의 설명보다는 입맞춤이 더 빈번했으며, 내 손은 나의 책으로 가는 일보다 더 자주 그녀의 가슴으로 갔던 것이네. 사랑은 두 사람의 눈을 교과서의 문자 위를 더듬게 하지 않고 서로의 눈망울 속에 머물게 했네. (32)


Abelard and Heloïse surprised by Master Fulbert
(Jean Vignaud 1819)



이대로 계속되었을까? 그럴 리가. 엘로이즈는 피신하여 아기를 낳고 아벨라르는 엘로이즈 삼촌(퓔베르, 그림 속에서 문을 열고 보는 이)의 사주로 수면 중에 거세당한다. 아벨라르는 성직자가 되고 엘로이즈는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둘 다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다. (내겐 이게 더 스캔들로 보인다만) 간혹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에게 이렇게 쓰기도 한다.


신을 걸고 맹세합니다만, 전 세계를 다스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나에게 결혼의 영예를 바치며, 전 세계를 영구히 지배케 하마고 확약해 준다 해도, 나는 그의 황후로 불리기보다는 당신의 창부로 불리는 편을 더 달갑게 여겼을 것입니다. (100)


자신의 거세를 결국 하느님의 정의와 관용이라 여기게 된 아벨라르. 하느님이 ‘정욕의 원천’을 제거하심으로써 자신을 도덕적으로 더 성숙시켰다고 생각하는 아벨라르. ‘죄를 저지른 그 신체 기관만을 쳐 없애’시어 구제받은 영혼이 되었다 믿는 아벨라르의 답문.


(…) 그분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애인이시오.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한 이는 그분이시며 내가 아니오. 우리 두 사람을 범죄 속에 몰아넣고만 나의 사랑은 정욕이며,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순 없는 것이오. 나는 당신에게서 나의 가련한 정념의 충족을 만끽했던 것이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당신을 사랑한 전부였소. (162-163)


이상이 2부까지이고 3부는 전적으로 교도의 편지(라고 한)다. 아마도 더 ‘높고 위대한’ 사랑이겠다. 중세라는 걸 내가 잊었던 모양이다.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부수적이고 약한 여자, 모든 규칙이 성서로부터 유추되는 비논리성에 헛웃음이 나는 걸 보면. 부제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내 소감은 ‘전설로 남은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다. 스캔들보다는 성직자적 교훈에 가까운. 22년 차이로 같은 나이에 사망한 두 사람이 합장된 묘는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있다. 아마 나도 보았을 것이다. 숙제 끝냈다.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5/09/23 14:57 # 답글

    흠... 전 아벨라르가 수도사가 된 후에 엘로이즈와 사랑에 빠졌다가 정신 차린 줄 알고 있었어요ㅋ 그게 아니었군요... 근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절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뒤에 합장을 시켰어요? 결국 엘로이즈가 이긴 거 아닌가요? ㅋㅋㅋㅋ
  • 취한배 2015/09/23 23:49 #

    워낙 똑똑하고 언변이 뛰어났던 아벨라르라, 철학과 신학을 두루 강연하긴 했는데 수도사가 된 건 '사건' 이후인 것 같아요. 그전에 엘로이즈랑 결혼까지도 하긴 했고요. 합장하려고 무덤을 파봤더니 엘로이즈더러 어서 오라는 식으로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네요? 엘로이즈가 이긴 거?ㅋㅋ 제가 보기엔, 신이 오히려 판단력을 흐리게 한 거. 불의에 대한 분노가 이렇게 '자기위안' 식으로 풀리는 게 저는 참 싫더라고요.-_-
    사다리 님 사건은 잘 해결되었는지요? 그렇지 않다면 (인용)욕! 더 해주세욤.ㅋㅋㅋ
  • 다락방 2015/09/25 10:45 # 삭제

    안녕하세요, 사다리님. 불쑥 인사드려 놀라시겠지만, 최근에 올라온 글이 좋아서 꼭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취한배님이 언급하신 욕도 좋았고(택시...) 더 최근의 썸 얘기도 좋았고요-반려동물 언급도요-. 사다리님 포스팅에 댓글 다는게 맞지만, 제가 이글루스 회원이 아니라...

    재밌게 읽었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이만.
  • 취한배 2015/09/26 02:25 #

    :)
  • 달을향한사다리 2015/10/03 22:40 #

    우왕~ 다락방님, 반갑습니당~ 글이 좋았다니 감사해요^^ 저는 오늘도 속으로 택시와 물안개를 수도없이 외쳤답니다ㅠ

    사실 예전에 가끔씩 엉뚱한 댓글 다는 비로그인 방문자들이 있어서 댓글을 그렇게 설정했는데, 다시 비로그인 댓글도 가능하게 해야할까 생각 중이었어요^^다락방님 댓글 읽으니 좀더 그 쪽으로 쏠리네요ㅎㅎㅎ
  • 취한배 2015/10/04 00:15 #

    호호호 비로긴댓글 가능하게 해 주세요, 사다리 님. 제가 ‘알라딘 악플러’거등요.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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