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주 Smoking

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창비

 

이덕무를 재발견하게 했던 <책만 보는 바보>(보림, 2005)를 기억한다면 안소영 작가의 윤동주도 읽고 싶어지리라. 빼곡한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단 한 문장도 그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리라. 우리 해방과 같은 역사 70년 전 옥사한 시인을 내 동무처럼, 내 선배처럼 되돌아보게 하는 저작 <시인 동주>다.


백석이니 이상이니 최현배니 정지용이니 익숙한 이름들이 소환되고 곧장 1930-40년대로 시간 이동한다. 우리 자신은 없었던, 그러나 우리 부모나 조부모가 청년이던 시절이자 일본 속국이던 때. 모든 사람이 그러했겠지만 특히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사멸할 운명으로 여길 법도 한 언어를 자료로 하는 심정과 아픔이 어떠했을지.


소중히 여기던 노트가 특고 형사의 거친 손아귀에서 내팽개쳐지자, 동주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다 하얗게 질려 버렸다. 자기 자신이 패대기쳐지고 짓밟히고 으스러지는 기분이었다. 특고 형사가 보는 앞에서, 우리말로 고심해 쓴 시를 거센 분절음의 일본어로 바꾸는 일은, 배를 가르고 창자를 다 끄집어내는 것과도 같았다. (270)


젊은 영정사진은 늘 슬프다. <암살> 같은 영화에서도 정지된 흑백사진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이유다. 광복을 몇 달 앞두고 운명을 달리한 젊은 시인 윤동주가 안소영 작가의 손에 다시 그려진 건 기쁘다. 삶이 짧고 소설도 짧다. 여운은 길다. 윤동주가 고민했던 ‘순수문학’에 대한 여정이 어떻게 이어졌을지 알 수 없는 건 큰 손실이지만 많지 않은 작품이나마 우리에게 남겨진 건 행운이다.


“나이두의 시를 본 적 있어요? (…) 그러고 보면 서정과 분노, 정의…… 이런 말들이 서로 다른 것이라 할 수 없어요. (…)” (249-250)


‘주요 인물 소개’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몇 줄로 요약된 한 평생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과 겹치는 인물들과 그렇지 않은 이름들. 당시를 살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친일인물들을 비난하기는 쉽다. 그리고 비난해야 한다. 그들의 행적은 (아래 발췌문) 이런 자손들에 의해 용서받기도 한다. 그래야 마땅한 일이겠으나, 그 용기에 오히려 울컥해지는, 이런 게 아마도 사과-용서이리라.


김동환 (1901~?) : 시인. 호는 파인(巴人). 1925년에 한국 최초의 서사시『국경의 밤』을 출간했고, 「산 너머 남촌」과 같은 민요시도 썼다. 종합 잡지『삼천리』와 『삼천리 문학』을 간행했고, 일제 말에는 『대동아』로 이름을 바꾸어 침략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해방 후에 ‘반민 특위(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에 체포되어 조사받았고, 6ㆍ25 전쟁 뒤로 생사를 알 수 없다. 그의 아들은 1994년에 『아버지 파인 김동환』이란 책을 펴내면서, 일제 강점기 때 부친의 행위에 대해 민족 앞에 사죄하는 글을 남겼다. (321, 주요 인물 소개)


해방 70년 윤동주 사망 기일 70년. 때맞춰 출간한 책인지 모르겠지만 때맞춰 읽어 더욱 좋다. 중학생 때 ‘시화집’에 <별 헤는 밤> 또는 <서시> 한번 옮겨보지 않은 사람 없으리라. 시화집은 아니지만 연희 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윤동주 자신이 출간하고자 했던 작은 시집이 함께 왔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안소영 작가이고, 나-독자들이다. 계속 불러도 좋을 이름이리라, 시인 동주.






덧글

  • 다락방 2015/09/19 20:05 # 삭제 답글

    저는 이거 좋다고 해서 사서 몇 장 안읽고 중단했는데, 중단하고나니 다시 보게 되질 않더라고요. 안읽을거면 팔자, 싶었는데
    고맙게도 측근님이 다시 읽자 쪽으로 생각을 바꾸게 해주셨네요.

    다시 읽어볼래요, 측근님.
  • 취한배 2015/09/20 01:25 #

    초반이 좀 심심하지요? 사실 저도 휘리릭 보진 못했어요. 죽음까지를 보고 나니까 결국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측근님 생각을 바꾸게 했다니,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모르겠네용. 암튼 즐독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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