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 Smoking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 
이반 레필라 지음, 정창 옮김/북폴리오


외젠 들라크루아의 아틸라


이 무서운 사람의 말을 훔쳐 어쩌겠다는 것인지? 시대적 배경이 따로 없고 공간은 숲 속 우물. 이번엔 고립된 어린 두 형제다. 정신줄 놓아가는 동생의 횡설수설 독백 중에 아틸라 왕이 언급된다. 그 말을 훔쳐 말발굽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으니 ‘내가 밟고 다닌 곳은 더 이상 풀이 나지 않았어.’(62)


우물 속에 버려진 두 아이, 전형적인 동화 장치다. 헨젤과 그레텔이나 장화홍련전 비슷한. ‘잔혹동화’라는 말을 쓰기가 껄끄럽다. 동화는 원래 잔혹하지 않았던가. 뽀샤시- 각색하고 체제 입맛에 맞는 정치색을 입혀 다스리기 쉬운 온순한 양으로 자라다오, 하는 게 오히려 잔혹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잔혹동화라고 쓰기 싫은 또 다른 이유, 얼마 전 <솔로 강아지> 전량 회수 사건 때문이기도 한데 마침 이 책에도 이런 부분이 있다.


“꿈을 무서워하지 마. 진짜가 아니니까.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이 뒤섞여서 그러는 거야. 꿈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억에 불과해. 만일 네가 어떤 걸 먹는 꿈을 꾼다면, 그건 배고프다는 뜻이야. 그게 다라고. 만일 네가 하늘을 날면, 그건 집에 가고 싶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안정을 되찾고 눈을 감는다. 그러나 잠들기 전에 묻는다.
“내가 엄마를 잡아먹는 꿈은 무슨 뜻이지?” (28-29)


학원 가기 싫다는 뜻? 아니다. 아닐 것이다. 스페인은 우리 같은 경쟁교육 지옥의 나라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본과 금융시장의 폐해를 고발하며 대대적인 비폭력 시위를 이어갔던 스페인이다. 2011년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시작한 ‘Indignados(분노하는 자들)’ 운동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라는 해설이 도움이 됐다. ‘분노하는 자들’이 이름을 딴 스테판 에셀의 저작 <분노하라 Indignez-vous!>는 우리도 2011년 여름에 만난 바 있다.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 시위, 2011. 5. 15
(출처 Wikipedia 저자 furilo)
http://www.flickr.com/photos/furilo/5729500520/

 

저 시절의 격앙과 희망을 상상해보면 우물로부터의 비상이 예사롭지 않다. 엄마를 죽이러 간다. ‘국가’의 상징이든 그렇지 않은 사형(私刑)이든. 통쾌할 법도 한데 여전히 억울하다. 완전히 고립되었던 초반의 우물과 달리, ‘끝없이 밀려드는, 숲 언저리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이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을 유지하면서 그가 치르는 의식을 지켜보고 있’(137)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우리는 반(反)제도주의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제도를 원합니다.’ 시위 당시의 한 문구다. 희생이 아깝지 않은 다른 제도여야 할 것이다. 때로는 숱한 희생 아랑곳없이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분노’는 어른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간혹 무거운 책임이기도 하다. ‘잔혹동화’를 나는 이렇게 읽었다.


“난 분노하고 있어.”
동생이 말한다.
“아냐, 너한테는 아직 분노란 게 없어.”
동생은 우애 없는 눈길로 형을 쳐다본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 일고 있는 이 분노는 뭐지?”
“그건 네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야.” (52)


 

덧글

  • 2015/09/10 18:31 # 삭제 답글

    이젠 마드리드에서 시위가 금지되어 홀로그램으로 시위를 한다는 슬픈 현재 ㅠㅜ
  • 취한배 2015/09/10 23:36 #

    오. '시민 안전법안' 즉 시위금지법을 반대하는 홀로그램 시위네요! 시민의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정부는 무식하고-_- 기발하게 항의하는 시민은 멋져요. 업데이트 소식 고맙슴미당. 현지 리포터 포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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