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Smoking

나를 찾아줘 - 8점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푸른숲

 

선남선녀로 이루어지는 완벽하게 행복한 결혼과 가정, 아직도 믿으세요? 이제쯤은 모두 알고 있지 않나요? 그런 건 아파트 광고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요. 남들 앞에서 얼마나 더 잘 연기하느냐가 관건인, 공인된 거짓말, 법이 인증하고 보호하는 신화, 행복한 결혼과 가정 코스프레 말이에요. 상류층, 훌륭한 주택, 아름다운 가구와 의상과 식사 등은 어쩐지 그 곪은 속을 더 잘 감추는 장치인 듯도 해요. 때로는 위안이나 보상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에이미는 주인공이어야 해요. 에이미를 배반해서는 안 돼요. 에이미는 완벽하고 ‘어메이징’해야 하니까요. 극단적인 성격이 이야기에 필요하긴 했겠지만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들 수도 있는 게 결혼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기도 해요. 오히려 섬뜩한 건 ‘어메이징 에이미’의 창조자들인 에이미 엘리엇 부모의 (완벽해 보이는) 결합이에요. 에이미+닉 부부의 곪아 문드러진 결혼생활이 조금만 더 능숙하게 연출되면 바로 그 모습일 거라는 암시로 읽혔거든요.


에이미와 닉. 자, 이제 끔찍한 비밀과 진실을 서로 털어놓았어요. 누가 얼마나 미쳤고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떠나 서로의 ‘불쌍한’(639) 참모습을 둘이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거예요. 이제 남들 앞에서 행복한 가정 코스프레할 준비가 끝난 듯해요. 이렇게 가족 제도의 신화는 계속될 거예요. 속은 썩어가도 겉은 점점 그럴듯하고 공고하게. 600여 쪽 ‘장미의 전쟁,’ 결혼이라는 지옥의 내면을 아주 살짝 보여줄 뿐이에요. 겁내지 마세요, 다들 알고 있지 않나요?


나는 대부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만의 질문을, 수년간 생각해온 질문, 우리 결혼의 불길한 후렴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무엇을 느끼고 있어? 당신은 누구지? 우리가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앞으로 무슨 짓을 더 하게 될까?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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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5/08/23 00:44 # 삭제 답글

    전 이거 영화로 봤는데 후폭풍이 장난 아니라 한참을 멍때리고 있었어요. 아 정말 세상엔 좋은 책과 영화가 너무 많아 ㅜㅜ
    어제 친구랑 얘기 도중 자기네 부모님은 결혼 얘긴 건너 띄고 (뛰고?) 바로 애 얘길 한다고 그러더군요. 결혼은 권하지 않지만 애는 가져야지 뭐 이런!? 충분히 웨스터나이즈드 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런 얘기 들으면 깜짝 놀라고 그래요. ㅎㅎㅎ
    여튼 전 비혼주의자 뭐 이런 얘기 꺼내면 너무 깜짝들 놀라시는 바람에 만혼주의자로 타협을 봤습니다. ㅋㅋ
  • 취한배 2015/08/23 01:48 #

    영화로는 부부간의 이런 살의가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하네요? 좋은 책과 영화에 네, 이 책도 들어가는 것 같아요.ㅎㅎ
    가끔씩 보던 동료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일화가 기억나요. 오! 그렇구나, 축하해요! 그 다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결혼식이 어쩌구저쩌구하기에, 와와! 결혼도 한다고?! 다른 동료들이 웃는 배경과 이유와 편견이 저는 놀라웠어요. 이걸 웨스터나이즈드?!되었다고 해야 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결혼-출산을 같은 그림에 두고 있지 않았;
    비혼주의자, 만혼주의자, 이혼주의자, 쾌락주의자, 어떤 거라도 포 님의 타협을 존중합니다.
    잘 도착했어요? 여긴 밤이면 선선한 바람이 어느새. 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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