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대한 성찰 NoSmoking


잔혹함에 대하여 
애덤 모턴 지음, 변진경 옮김/돌베개

 

히틀러, 악의 얼굴. 이라고 하기는 쉽다. 다시 말해 시ㆍ공간적으로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큰 악에 대해 무서워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악의 개념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가해자가 내 측근이기도 하다가 나이기도 하다가 또한 내 나라이기도 하고 다시 아이히만이고 폴 포트이기도 하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 개인으로 행한 악과, 집단학살, 고문집행자, 전범들의 그것까지를 모두 다룬다. 내 오늘-주변과 우리 역사-세계사가 따로 떼어지지 않고 크고 작은 악의 개념으로 내 머릿속에서 얽히고설킨다. 책으로 보자면 마이클 스톤 <범죄의 해부학>‘류’ 부터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프리모 레비, 솔제니친, 테렌스 데 프레 <생존자>, 프랑수아 비조 <문> 등을 아우른다. 심리학적이고 윤리학적이며 사회학적 접근이고 결국은 가해자-피해자 간 용서와 화해까지도 상정하는, 크고도 작은 책이다.


내게 모욕을 준 어떤 사람부터 일본 총리 담화까지의 모든 악. 날이 날이다 보니 아베 총리의 뉘우침 없는 담화나 우리사회 내 아직도 까마득한 친일청산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무라야마 담화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일본의 독선과 우리나라 정치 언론 경제계에 아직도 수두룩한 친일후손들. 사과하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런 말이 더욱 소중해지는 요즘이다. “상대가 ‘개운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사과했으면 알겠습니다. 이제 됐습니다’고 말할 때까지 사과할 수밖에 없다. 사과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에 비해 일본 총리나 우리 친일후손들의 후렴구는 같다. “과거는 자꾸 들춰서 뭐하나, 미래를 봐야지.” 천만에. 과거를 바로 잡아야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고 살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밝게 읽힌 부분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가 한 일이었는데 비록 완전하게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뛰어났던 성과. 특징 중 두 개를 옮겨본다.


ㆍ사면 신청자가 회개와 죄책감을 표명할 의무는 없었지만,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실제 벌어진 일이 끔찍했다는 점과, 그 일에 따른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ㆍ위원회의 최우선 목표는 진실 규명이었다. 사면 지원자나 그 이전에 증언한 사람의 주요 의무는 실제 벌어진 일의 전말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204-205)


한 마디로 사실인정과 진실규명이다. 자기 아버지에 대해 사과하고 뉘우친 스베틀라나 스탈린이나 조부의 친일행각을 밝히고 참회한 우리나라 모 국회의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자꾸 물어보게 된다. 사과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 사과와 뉘우침이 있어야 용서도 가능하다. 화해는 다른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또한 그럴 목적과 동기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악을 초래한 이상 진실을 밝히지 않고 파묻으려는 행위 역시 악이 아닐까. 저자가 다시 전해주는 프리모 레비의 일화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터다. 수용소를 빠져나와 수감 생활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217) 악몽.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대해 ‘마침내 누군가가 말한 것이다.’(218)라고 당시 소비에트 전역에서 느꼈다는 안도감도 같다.


악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용서와 화해까지 언급하는 면이 이 책을 조금 밝게 만드는 것 같은데, 그건 아무래도 저자의 현재 활동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화해를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MVFR)’이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감정, 심리에 대한 고려가 깊은 게 무척 와 닿았는데 내가 가장 진하게 밑줄을 그은 부분이 여기다.


감정적으로 정교한 사람은 섣부른 느낌에 빠져들지 않고, 상황에 적합한 감정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는 화해가 더 적합한 상황에서 용서를 구하지 않으며(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후회가 요구될 때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212)


감정적 정교함!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에게 위로를 찍 싸지르고 마는 짓거리를 고발하는 문구다. ‘위로하지 마십시오,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는 것이지 슬픈 게 아닙니다.’ (유경근 대변인의 말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같은 문장이 말하는 바이기도 하다. 감정적 정교함이 없는 행위는 2차 가해와 다름없다. 나무인형처럼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무지. 그리고 관료들의 상상력 결핍은 둘째치고라도 진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아몰랑’이 지금 내게는 악으로 보인다. 진실 규명은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악의 순환을 끊기 위해서이고 용서, 화해하고 다시는 같은 악이 저질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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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 옮김/사계절원제가 &lt;악의 힘&gt;이란다. 읽다가 보니 이미 읽은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럴 리는 없고. 애덤 모턴의 &lt;잔혹함에 대하여&gt;(돌베개, 2015)와 많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애덤 모턴 책의 원제는 &lt;악에 대하여On Evil&gt;이니 그럴 법도 하겠다. 국가의 악으로 악악거렸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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