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안의 낯선 자들 Smoking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10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오픈하우스

 

하이스미스의 첫 작품이고 벌써 리플리의 냄새가 풍긴다. 정신분열적이고 냉혹하며 애정결핍을 겪는, 문학 역사상 유명한 ‘공상허언증자’의 탄생을 5년 앞두고 있고, 어쩌면 그래서, 아직은(?) 남아 있는 하이스미스의 온기에 오히려 놀랄지도 모른다. 나는 그랬다. 인간성의 심연을 파헤치던 중 양심이라는 뜨거운 것을 아직은 쥐고 있는 하이스미스. 모든 차가운 것은 한때 뜨거웠던 적이 있다, 는 말이 있었던가. 없었다면 지금 만들어 쓰겠다. 카리스마, 완벽한 냉혈한 톰 리플리가 되기 위해 한때, 유약하고 휘둘리고 양심적인 가이 헤인스와 권태로운 부르주아 찰스 브루노가 있었다.


살인 행위는 막상 단순하고 짧다. 장황한 건 심리다. 언젠가부터 심리학 도서를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런 책들은 어김없이 중언부언, 어디에나 붙여도 말이 되며, 이것이다, 싶은 명쾌함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하이스미스는, 그의 문장은 어찌나 정확하고 멋진지 내게 심리학은 ‘실용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하이스미스에서, 문학에서 찾는 일이 되었다. 줄거리는 친절한 책소개에 다 나와 있고, 재미와 감동은 읽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인간적으로는 괴팍하고 염세적인 작가이나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 없는 작품세계다.


브루노는 아까부터 전화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전화기를 볼 때마다 가이 생각이 났다. 지금은 잘 설치된 두 대의 전화기로 가이에게 연락할 수 있었지만, 가이가 싫어할 것이다. 가이는 여전히 신경이 곤두서 있을지도 몰랐다. (…) 브루노가 완전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건 가이가 전화나 편지로 행복하다고 알려주는 것뿐이었다. 이제 그와 가이는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 (133-134)


2000년에 나온 영화 <당신의 영원한 친구 해리 Harry, un ami qui vous veut du bien>가 얼핏 떠오르기도 했고,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친구’ 스토리는 하이스미스의 야릇한 브로맨스와 떼어놓을 수 없는 뭔가가 됐다. 애정결핍, 여자는 싫어하면서 어머니는 예외적으로 신성시하며 망상에 젖어 소통 없이 집착적으로 남자친구를 사랑하는(!다른 단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미성숙하고 권태로운 남자, 하이스미스의 캐릭터다. 리플리 시리즈에서 그야말로 섬뜩하게 활개를 펼칠 인물. 알랭 들롱에 이어 맷 데이먼을 각인시킨 사이코패스. 그 프리퀄을, ‘한때 뜨거웠던’ 하이스미스를 이 여름에 만나... 더 더운가, 리뷰 끝이 왜 이런가.


“이 말도 해야겠습니다.” 가이는 굽히지 않고 말했다. “내가 상처 준 사람, 가장 마음 아파한 사람이 당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350)

오언은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약간 움직였지만 여전히 그 자세로 있었다. 웃어야 할지 찡그려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상관이냐고요? 당신은…… 당신은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죠!” (357)



출처: 다음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


1951년 히치콕이 영화로 만들었고 레이먼드 챈들러가 각본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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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5/08/06 23:50 # 삭제 답글

    하이스미스의 책은 아직 못읽어 봤지만 리플리라고 하면 맷 데이먼보단 존 말코비치 얼굴부터 떠오르는데요. 아주 강렬했나봐요. 아주 오래 전에 봤는데도 말이죠.
    차가운 것의 과거.. 어쩐지 슬프네요. 반대로 뜨거운 것의 과거는... 역시 슬프구요. 과거 따위.. 흥!
    흑백영화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궁금해지는 영화의 한 장면! 저것은 브랜디인가..
  • 취한배 2015/08/08 20:04 #

    존 말코비치라면 정말 어울리는 리플리였을 것 같아요! 저는 못 봤나 봅니다. 보고 싶네요.
    쓰다 보니 저렇게 됐는데 하도 냉혹한 하이스미스이다보니 뜨거운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예상보다 살짝 따뜻했어요. 되게 재밌는데 포 님도 좋아하실 듯요. 라벨도 안 보이는 저것. 소설에서 위스키가 꽤 나오는 걸로 봐서 아마 위스키가 아닐까용? 즐거운 지구생활(응? ‘마션’을 읽고 왔더니;) 중이신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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