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 마운틴 Smoking

고트 마운틴 - 10점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arte(아르테)
 

‘복면소설’이었다면 자신만만하게 그 이름을 댔을 작가다. 첫 장부터 당장, 이라기엔 좀 과장이지만 적어도 둘째 장에서는 틀림없이 알아봤을 거다. 그 문체와 문채와 냄새에는 코맥 매카시도 있고 아고타 크리스토프도 있고 성경도! 있다. 무심한 듯 적대적이다가 한없이 부드럽기도 한 자연배경의 아우성과, 도덕성에 대한 어떤 월경(越境),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 데이비드 밴이다. 첫 작품『자살의 전설』이 실수로 이룬 정점이 아니었음을 『고트 마운틴』이 웅변한다.


『자살의 전설』에서 송장을 끌고 다니는 아버지는 아직 여전하고, 죄 없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죽어버렸던 십대 아들은 마치 부활한 듯하다. 기를 펴보지도 못하고 송장이 되어 자루 속에서 끌려 다녔던 아들이 아버지들의 규칙을 바꾸기 위해 다시 온 것 같기도 하다. 내 어버지의 아버지를 죽이고 비로소 어른이 되어 『고트 마운틴』을 마감한다. 『자살의 전설』에 이은 또 하나의 씻김굿일까. 한쪽이 씻으면 덮어쓰는 쪽은 또 있기 마련, 이렇게 계속되어도 좋겠다, 데이비드 밴이라면.


문학은 도덕이 아니다. 문학은 ‘쓸모없음’이면서 동시에 문제제기이고 상상력이며 무의식의 발로다. (도덕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치적 올바름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보는데, 후자에 대해서는 나, 가차 없다.) 네크로필리아적인 장치라거나 어린이의 지나친 성숙 같은 것을 도덕적 잣대로 보자면 패륜, 그러나, 그러니까, 문학이다. 이런 ‘센’ 이야기를 내가 왜 좋아하는지를 다시 물어본다. 어쩌면 이렇게 살(生) 수 없도록 억압하는 세계 때문이고 내 무의식이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고 다른 가능성을 현실에서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순수, 순진무구한 아이를 상정하는 이야기를 좋아해본 적 없다. 내가 아이인 적은 있었지만 순수하거나 순진무구하지는 않았다. 행복한 가정을 상정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자연은 아름다웠고 사슴사냥은 순조로웠다’는 내용을 기대하고 데이비드 밴을 펴 들지 않았고, 옳았다. 충격적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아직도 얼얼하다. 내 기억에, 이 작품 마지막 페이지에 비로소 처음 나오는 단어가 있는데- 이 정도로 놀랍고 섬뜩하고 생경하게 다가온 적이 없다. 데이비드 밴은 진부한 단어를 새롭게 만드는 시인인지도 모르겠다. 그 단어는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의 눈은 잘 닦인 금속처럼 밝디밝은 잿빛이었다. 거대한 덩치가 넘어오는 내내 그 눈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우리가 함께 가는 추락. 그 사이 어딘가에서의 조우. 시간이 느려지고 중력이 약해졌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사랑이었다. (288)

 




덧글

  • 다락방 2015/07/29 15:41 # 삭제 답글

    측근님은 포스트잇도 깔끔하게 붙이시네요. 왜 같은 크기로 같은 형식으로 붙이는 데 내것은 지저분하게만 느껴질까요?

    여하튼, 고트 마운틴은 보관함으로 슝-
    그 '사랑'이 궁금해서 말이지요.
  • 취한배 2015/07/30 22:28 #

    사진 찍는다고 포스트잇들이 긴장해서 차렷!했나 봅니다.ㅎㅎㅎㅎ
    이 책은 특히 매카시 <핏빛 자오선>이 많이 떠올랐어요. 아, 데이비드 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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