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찾아라 Smoking

소름 - 10점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명남 옮김/엘릭시르

 

내 기준으로는 《소름》이야말로 맥도널드를 왕좌에 앉힐 수 있는 작품, 그의 주된 관심사의 본질을 제시하면서도 미스터리 장르사상 가장 근사한 엔딩을 지닌 매끈하고 완벽에 가까운 스릴러로 기능하는 작품이다. (존 코널리,《죽이는 책》 330)


존 코널리가 《죽이는 책》(책세상, 2015)에서 언급했다. 《블러드 워크》의 마이클 코넬리가 아니고 《잃어버린 것들의 책》(폴라북스, 2008)의 더블리너 존 코널리다. 《죽이는 책》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명성만 숱하게 들리던 거장, 로스 맥도널드를 드디어 만났다.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우아함과 ‘소름’의 작품이다. 섬뜩하기도 하지만 곁다리가 하나도 없이 경제적으로 완벽한 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름과 감동. 해당 시점에서 20여 년 전까지 올라가는 사건의 500여 쪽에서 더하거나 덜어낼 문장이 없다.


‘여자를 찾아라’에서 시작하여 의외로 금방 찾게 된 여자. 맥 빠진다고? 천만에. 곧이어 더 소름 돋고 더 비밀에 쌓인 ‘여자를 찾아라’로 연결된다. 안개, 비밀, 가면, 마마보이, 정신분석. 불필요한 요소는 하나도 없다. 친절한 진행이어서 앞부분을 다시 찾아보아야 하거나  아차-하는 트릭 같은 것도 덜컹거림이 전혀 없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빠른 진행, 마침내 맨얼굴로 드러나는 진실.


《죽이는 책》 존 코널리를 조금 더 인용하고 싶은 마음이다. 코널리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작가 둘 중 한 명 제임스 리 버크(다른 한 명은 당연히 로스 맥도널드)를 언급하면서 한 말로, 버크는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요지다. 순문학-장르문학 분류에 대한 내 생각도 다르지 않은데, 이언 매큐언의 《속죄》나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같은 걸 읽었을 때 감상이 그랬다. ‘장르문학’의 모든 요소를 품고 있지만 ‘순문학’으로 분류되는 지점. 반대방향으로 이번 《소름》이 그랬다. 장르문학이 순문학의 아래에 위치하는 게 아니라 ‘문학에는 오직 좋은 글쓰기와 나쁜 글쓰기만이 존재한다.’ (《죽이는 책》327)는 코널리의 주옥 말씀.


로스 맥도널드에서 이미 ‘장르문학’의 우아함과 감동과 놀라움, 즉 ‘좋은 글쓰기’를 보아버렸으니 코널리가 첫째로 꼽은 버크는 얼마나 더 멋질지 번역물로 만나보고 싶고, 예전 맥도널드도 다 보관함에 넣었다. 덩달아 코널리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는, 여러모로 풍족한 엘릭시르-김명남 번역-맥도널드와의 조우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됐다. 샘 스페이드, 필립 말로보다 나는 루 아처 편, 팬이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로스 맥도널드를 시기하고 폄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덤.


《소름》은 여러 면에서 분노에 차 있고, 익숙하면서도 기묘하게 낯설며 본질적으로는 고딕적인 소설, 맥도널드가 당시 경험하던 불행을 쏟아 부은 소설이다. (…) 레이먼드 챈들러의 무시로 받은 상처. 사실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은 챈들러에 대한 음흉하고도 기나긴 빈정거림으로 읽힐 수도 있다. (존 코널리, 《죽이는 책》330-331)


그런데 챈들러 잔을 선물로 받아버린 아이러니. 로스 맥도널드 새 번역들이 더 나와 부디 사은품으로 루 아처도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재떨이나 라이터 같은 거라면 나는 참 좋겠지만;)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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