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문학을. NoSmoking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 10점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작가정신

 

우리 각하의 서재 상태는 전여옥 씨에 의해 알려진 적 있다. ‘서재에 일단 책이 별로 없었고 증정 받은 책들도 있어 통일성을 찾기 어려웠다.’(CBS 인터뷰 중) 굳이 전여옥 씨의 전언이 아니어도, 3년을 겪은 마당에 그의 상상력과 공감력, 언어능력의 빈곤함을 누구나 알게 됐다. 급기야 최근 등장한 ‘번역기’까지는 말하기도 솔직히 부끄럽다.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무지 부끄럽다. 얀 마텔의 정성스럽고 너그럽고 근성 넘치며 똑 부러진, 그러나 수신자(하퍼 수상) 입장에서 보면 얄밉기도 할 ‘행동’이 부럽기까지 한 이유다.


‘행동’이라고 했는데, 아마 ‘운동’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책이다. 간결하고 훌륭한 서평+한 정치인을 향한 서간 호소문+문학 찬양까지 두루 갖춘 메타북. 문학과 정치를 연관 짓는 것에 아직도 찜찜함을 가진 이 없으리라 보지만, 상상력이 정치나 문학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으로 미리 답하련다. 상상력에서 비롯되는 공감과 배려, 연민 같은 감정이 배제된 정치는 독재로 흐른다. 민주주의가, 국회가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꼴을 보고 있는 지금, 각하, 문학을- 이라고 하기에 어쩌면 좀 늦었을까. ‘문학력’은 입법, 사법, 행정에 있어 근저가 되어야 함을,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와 안경환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등에서도 똑같이 읽을 수 있다.




우리 각하의 후보 시절 슬로건을 얀 마텔이 알았던 것일까? 악몽은 계속되고 있다.


알라딘 전자책 ‘무료대여’라기에 내려 받아 (띄엄띄엄) 읽었다. 얀 마텔의 근성과 능청스러운 유머가 어우러져 아주 매력적이다. 격주에 한 번씩 수상에게 편지와 책 보내기 운동. (본인의!) 아기가 태어난 기념으로 모리스 샌닥 그림책을 보내는가 하면, 새 책 출간에 따른 일로 바빠 자리를 비워야할 때면 동료 작가(아버지와 부인까지 포함된! 이게 정말 멋졌다)들이 잠시 대신 해주기도 한다. 간혹 각 편지 서두에, 동봉하는 책의 성격을 한 줄로 첨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까지도 매력적이다. 예컨대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께,
불온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책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Book 12, 아트 슈피겔만, <쥐>)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께,
현명하고 너그러운 작가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Book 16,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께,
수상님의 손에 불덩어리들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Book 90, 앨 퍼디, <시 선집>)


그리고, 101번째이자 마지막 편지에 아래 머리글과 함께 동봉되었던 이 책?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께,
우리는 시간을 되찾아야 하기에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그렇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이 귀여운 건지 저자님이 귀여운 건지. <파이 이야기>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얀 마텔의 매력 만나보길 추천한다. 무료대여 기간이 끝나면 크레마에서 저절로 삭제되는 모양인데, 그러면 좀 아쉬울 것 같기도 한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대답 없는 이들이시여.





덧글

  • 나인테일 2015/07/08 13:37 # 답글

    각하! 독서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
  • 하늘여우 2015/07/08 18:17 #

    이 드립 치려다가 위험해서 머리속에서 자진삭제했는데 이분...
  • 취한배 2015/07/09 02:08 #

    아앗, 저에게 남겨진 대사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가요;; 멋진 드립입니다+자진검열은 슬프고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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