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Smoking

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 - 8점
캐럴라인 케프니스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무섭고 개운하다. 기상천외한 범죄 때문에 무서운 게 아니라 현실과 너무 가까워서 무섭다. 개운함은 집착이 사라지는 순간에 오는데, 일종의 안도감이나 위로와도 비슷했다. 사랑-집착은 아주 가깝다. 사랑-범죄에는 큰 차이가 있을 터이나 집착-범죄는 또 가깝다. 사랑-집착-범죄가 현재적인 행태와 언어로 엮인 이 작품은 ‘#어느 사이코패스의 사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사랑-집착-범죄를 각각 이질감 없이 하나로 받아들이고 행하는 이를 우리는 아마 사이코패스라고 부를 것이다.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거듭 읽게 되었던 문단을 보면 대체로 ‘는 ~다’ ‘는 ~다’ 거나 ‘ 손이 ~다’ ‘ 손이 ~다’ 이런 문장들. 이게 너였는지, 나였는지 주어로 다시 올라가 읽게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글 너-나, 네-내의 닮은 꼴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영어 원문에서라면 you-I, your-my 로 아주 다른 형태를 이룰 것인데 우리글 너-나가 오히려 더 나은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나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차차 알게 되는 진행으로 보자면 그렇다. (작품 속 너-나뿐 아니라 사랑-집착을 겪어봤을 독자인 우리의 너-나까지.) 긴 번역제목에 비하면 원제가 단 한 단어《You》이고, ‘가 서점으로 들어온다.’(7) 가 첫 문장인 점도 멋있다.


특정 이슈가 떠오를 때 빠른 정보를 얻으려고 잠시 살펴보는 것 외에 나는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유익한 정보를 널리 퍼뜨리거나 아름다운 문장을 생산해내는 좋은 점은 인정하나 그만큼의 허세 또한 상존하기 때문이다. 남의 문장을 제 것인 양 떡하니 날리는 트윗은 말할 것도 없고, ‘너’라고 불릴 한 사람과 배려 어린 대화는 할 줄 모르면서 일방적인 배설만 하려는 과시욕 쩌는 계정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무슨 노출증 환자 같은 느낌까지도 든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트위터를 한다면? 한 순간에 ‘트위터 스토커’가 될 수도 있다. 이건 사랑인가 집착인가.


‘노출증자’ 당신의 취향, 지금 상황과 계획과 일정을 다 파악한 후에 내가, 당신과 같은 취향과 경험을 가진 척 한다면. 더 나아가 당신 주거지역을 어슬렁거리거나 지켜보다가 우연을 가장하여 마주치거나 같은 동선을 취하게 된다면, 이런 것들은 사랑인가 집착인가. (그리고 범죄인가.) SNS를 이용한 가택 절도 사건은 실제로 이미 발생한 바 있다. (이건 범죄다.) SNS 시대 사랑-집착-범죄는 이런 모습이다. 집착은 사랑의 속성이기도 하고 범죄의 싹이 되기도 한다. 착각하면 낭만이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범죄다. 모두 사랑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무섭다.


“트위터는 개뿔. 나는 내 인생이 더 좋아.”(371)라고 말하는 인물이 딱 한 명 나온다. 이 소설을 읽으면 당신이 저 대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응원한다. 트위터와 문자메시지, 이메일 (《새벽 3시, 바람이 부나요?》보다 덜 두근댄다, 당연히!) 문장들이 함께한다. 문자메시지에서 ‘ㅇㅇ’을 꽤 쓰는 나는, 그리고 ‘ㅇㅇ’이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음을 아는 나는 발췌문으로 이것을 고른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대답. 그 어떤 말보다도 간단하고, ‘아니’보다도 더 매몰찬 대답. 그리고 언어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너 같은 사람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그 대답.
ㅇㅇ
나는 이 무서운 ‘ㅇㅇ’을 받아든다. (416)




 

아버지 사망 후 집필을 시작했다는 작가. 아름다운 헌사. 멋진 첫 장편. 후속작도 기대하고 있다.
집착 허용 테이프 ‘좋아하는 건 소유해야 하는 거야. 단순한 사실이지.’를 받고 싶었는데 엘러리 퀸이 왔네. 뭐 집착하지 않을 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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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5/06/25 03:51 # 삭제 답글

    원문으로 ㅇㅇ은 뭘까요? 영어로는 K. 정도인가..
    아니면 빈칸문제였나여!!!!
  • 다락방 2015/06/25 06:19 # 삭제 답글

    빈칸 문제라고 생각했는데요!!! ㅎㅎ
  • 2015/06/25 07:12 # 삭제

    근데 가끔 ㅇㅇ이 아니보다 더 잔인한 것도 맞지 않나요? ㅋㅋㅋㅋㅋ ㅇㅇ으로 이해해도 말이 다 되니깐..
  • 다락방 2015/06/25 09:38 # 삭제 답글

    ㅇㅇ 이 맞나보네요. 다시 읽어보니 말입니다.
  • 취한배 2015/06/28 02:40 # 답글

    어이쿠야.ㅋㅋㅋㅋ 글로 귀여울 수 있는 극대치를 본 것 같습니다, 두 분.ㅎㅎ 저, 보기 없이 빈칸문제 내지 않습니다. (예전덧글금지시절에 ‘술’ 한 번 빼고) 포 님, 안 그래도 원문으로는 뭘까 저도 궁금궁금+K.는 어디에서 온 단어인가요?+저는 ㅇㅇ 좀 좋아하능데, 물론 싫다는 사람에게는 안 쓸 거. 다락방 님 ㅇㅇ
  • 2015/06/28 03:29 # 삭제 답글

    오랜만입니다. 날씬한 애인이랑 데이트하느라 바쁘신건가요??
    K는 ok에서 온 말인데 pp랑 싸울때나 삐졌을때? 사용하곤 했었죠. ㅋㅋ ㅇㅇ마냥
  • 취한배 2015/06/28 03:46 #

    오랜만- 날씬한 애인이랑 데이트하고 싶어 바쁘;; 포느님.
    앙 그렇군요. 피피 크크 응응 뭐지 이 운율은.ㅎㅎㅎㅎ 공부 잘 돼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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