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명의 여자 NoSmoking

일곱 명의 여자 - 10점
리디 살베르 지음, 백선희 옮김/뮤진트리

 

이화경의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웅진지식하우스, 2011)와 당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는 역작이다. 이화경이 함께 ‘밤을 새는’  열 명의 작가리스트는 제인 오스틴으로 시작하는데 비해 리디 살베르는 에밀리 브론테다. 샬롯 브론테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색깔과 취향을 짐작하여 당장 구해 읽었고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어두운 힘과 정열, 천재성과 근성이 관통하는 일곱 명의 목록이다.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열 명의 여자’와 <일곱 명의 여자>에서 겹치는 이름은 실비아 플라스, 버지니아 울프, 잉에보르크 바흐만. 다른 말로 인증 받은 세 천재이자 그만큼 작품과 삶도 잘 알려져 있다는 의미이겠다. 이제는 어지간히 ‘알고,’ 평가도 제대로 되고 있다지만 그 내용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과는 참 달라서, 이번에 나는 잉에보르크 바흐만을 새삼 다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책은 가만히 있다. 간혹 번역과 표지를 바꾸면서 최대한 가만히. 그러면서 하나의 지표가 되어, 네가 얼마나 변했는지 보아라, 라고 말하는가 보다. 문예교양총서50 세로쓰기 <삼십세>를 스무 살 무렵에 읽고 던져두었던 ‘바하만’에 내가 무안해졌다. 파울 첼란도, 막스 프리쉬 도 내가 만나기 전이었고 서른 살에 살아 있을지조차 몰라 했던 때다. ‘서른 살이라니, 세상에-’ 라고도 했을 것이나, 이렇게 읽어내기까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마침내 깨달은 것은 국가 파시즘이 은밀하게 내적 파시즘으로 연장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눈에 덜 띄고 한결 교묘하지만 여전히 치명적인, 사적인 파시즘이었다. 여기서 내쫓긴 파시즘이 저기서 나타났다. 더 나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애정 관계에까지 끼어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259)


정부나 정치판에서 보여주는 갑질, 귀 막고 제 말만 하기, 눈치 보기, 이기주의 등이 내가 상대하는 개인에게도 깊이 스며있음을 확인하고 좌절한 건 비교적 최근이었다. 한 인격체를 겪는 과정이 세상을 읽고 이해하는 것과 놀랍게 비슷하다는 것 말이다. 새누리 같은 무리가 우리의 여당일 수밖에 없는 이유, 듣지 않고 읽지 않고 마냥 자기에 도취해 딴청만 피우는 이상한 사람이 우리 대통령인 이유. ‘잘못했다’고 끝까지 말하지 않는 태도, ‘대화하지 않겠다’는 독선, 오로지 자기 보신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비겁자들, 공감과 배려가 자신의 사전에 없다는 것에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신만만해 하는, 무식하면서 겸손하지도 않은 자들의 엄연한 존재를 언론에서 보듯 개인으로 겪고, 하나의 인간관계는 사회의 축소판, 한 인간이 세상이고 우주, 라는 문장을 쓰는 지금 나는 40대다. ‘서른 살이라니, 세상에-’



버지니아 울프는 불어본으로 꽤 갖고 있다. 부드러운 물결 같은 글발은 불어로도 한글로도 여전. 다 읽었는지는 묻지 않으시길. 리디 살베르는 토마스 베른하르트 에 이끌려 잉에보르크 바흐만을 만난 모양이고, 나는 리디 살베르로 인해 바흐만을 새로 만난다. 새 번역본 가로쓰기 <삼십세>와 <말리나>를 보관함에 넣었다. 만 레이의 사진으로만 보았던 주나 반스의 카리스마와 개성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다. 읽고 싶다. 무한히 이어지고 다시, 또 다시 발견하고 처음 만나기도 하는 책의 연쇄, 아름다운 <일곱 명의 여자>다.


                           

        1921년 경 주나 반스 출처 Wikipedia


사랑받는 작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책들로 우리를 이끌고, 사랑받는 책들은 사랑받는 다른 책들로 우리를 이끌어 마지막 날까지 무한히 이렇게 이어져 고갈되지 않는, 언제까지고 완성되지 않는, 비물질적이지만 살아 있는,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심장과 같은 거대한 책을 이룬다. (245)




덧글

  • 여름아이 2015/06/14 22:10 # 답글

    마지막 문장이 너무 가슴에 와닿습니다!
  • 취한배 2015/06/14 22:20 #

    그죠, 여름아이 님. 링크-링크-링크되는 책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