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NoSmoking

슬픔에 끌린다. 행복이나 기쁨보다는 우울과 불행에 매혹된다. 항상 그랬다. 왜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토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거나 내 운명에 대한 첫 인식, ‘뜬구름’과 함께 너무 일찍 인생무상을 알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자릿수 나이였을 때 파파님이 내 손금을 보고 말했다. ‘뜬구름이구나.’ 그때 이미 현실감각을 놓기로 했다. 아니, 이만큼 살아오다보니 현실감각도 없는 주제에 우중충하고 울적한 어른이 되어 있더라. 해피엔딩은 작위이며 실제와 진실은 슬픔에 가깝다는 생각을 품은 채.


울적한 10명의 사상가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 이 책이 그러니 무언가 내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지 않을까 했다. 근데 이상하다. 문장이 와서 착 달라붙지 않고 자꾸 튕겨져 나간다. 어쩌면 슬픔에도 여러 취향이 있는 모양으로, (외래어남용주의) 시프테의 것이 아카데믹하면서 하드보일드하다면, 내 것은 데카당스, 딜레탕트, 멜랑콜리에 가깝다고 할까.


아무튼 이 책, 자기 고백록에 가까운 형식으로, 독자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은 자기만족적인 에세이인 것 같다. 중요한 감정 중 하나인 슬픔을 체계적으로 다듬은 것도 아니고 철학적 또는 문학적으로 든든한 받침을 찾아주는 것도 아니다. 3장 마르셀 프루스트 편만 읽었고, 다시 읽었고, 시프테의 슬픔은 내 슬픔에 위안이 되지 못함을 확인했고, 그걸로 충분한 것도 같다.


슬픔은 혈액에서 희석되고 세포 속으로 서서히 퍼져 현실에 대한 감각적, 심리적 지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우울, 즉 모든 것에서 멀찍이 물러난 채 수고롭고 소란스러운 삶에 진저리치며 오로지 관망만 하는 의식 상태로 변한다. 독일인들은 우울을 ‘세월병’이라고 부른다. 마치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속에 섞여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부식성 물질처럼, 초, 분, 시, 일, 주, 월, 년의 흐름이 우리를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70-71)


‘세월병’이 독일어로만 불리지 않을 경험을 우리 모두가 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아기는 태어나고 ‘소소한’ 일상은 계속되고 행복과 사랑과 해피엔딩이 이어지는 게 놀랍지만, “The show must go on”이니까. 토성은 지금도 저 우주 어딘가에 있고, 내 손금이 변했는지 어떤지 확인하지 못했고, 존 어빙의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 중 이런 문장을 떠올리는 나도 아직, 그냥 있다.


카르멜라는 틀림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새로 만난 남자와도, 그리고 그녀의 삶을 꾸려가는 일에서도. (행복했다는 것 말고는 카르멜라가 이토록 지겨운 사람이 된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 2권 268)


Bon Week-end!





덧글

  • 다락방 2015/05/18 12:13 # 삭제 답글

    저도 이 책 보관함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이제 관심도서에서 빼버려야겠어요.

    일전에도 말씀드린 적 있지만, 측근님의 독서는 매우 폭이 넓은 것 같아요. 이 책을 하나 읽고나서 연관되는 다른 책들의 이야기까지. 위에 호시노 미치오 리뷰에서도 그렇고요. 연관되는 책들의 인용문을 가져오는 것도 또 다른 책들을 꺼내놓고 가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름다운 능력이며 취향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 쓰다가 생각났어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는게 아니라 그저 가만 들여다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참 좋지, 하는거요.

    점심 때에요, 측근님.
    점심 맛있게 드세요!
  • 취한배 2015/05/19 01:19 #

    이 책 이상하게 잘 읽히지가 않았어요. 과감하게 덮어버리고 나니 저야 시원하긴 한데... 측근님 관심도서에서 삭제된다니 왠지 죄송-_-;
    독서 폭이 넓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다락방 님이야말로 소설에서는 폭을 따라올 사람이 없을 텐데요. 좋아하는 책을 가만 들여다보는 거, 아니나 다를까 저 알래스카-시베리아 책들을 모아놓고 보는 게 참 좋았습니다. <자살의 전설>은 우리 공통도서이기도 하지요? 좋아하는 책은 가까이 두고 볼 수만 있어도 참 좋다는 느낌을 측근님과 공유할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
    점심 뭐 드셨어요? 저는 커피만 줄기차게 마시다 저녁 핑계-술 마시고 이제 새벽이네요! 굿나잇+좋은꿈-측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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