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숭고하다 NoSmoking

담배는 숭고하다 - 8점
리처드 클라인 지음, 허창수 옮김/페이퍼로드

 

아침에(때로는 오후에) 눈을 떴을 때, 하루의 첫 커피를 마실 때, 배고플 때, 샤워 후에, 뭔가가 혹은 누군가가 무척 그리울 때, 결핍감을 어쩌지 못할 때, 집중할 때, 한숨 쉴 때, 오르가슴 후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 참, 그리고 심심할 때.
내 담배의 순간들이다. 파괴본능에 맞춤한 독, 몸에 해롭다는 점 때문에 더 중독적이고 ‘금지’가 종용되는 만큼 더 유혹적인 대상. 즐기는 사람과 극도의 혐오감을 가진 사람들로 나뉘는 대표적인 사물, 담배다.


흡연의 자유는 자유라는 문화 계층의 중요한 징표로서 이해되어여만 한다. 그 자유가 위협을 받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자유들이 위협을 받지 않나, 그리고 또 다른 통제들이 가해지지 않나 하고 조심해야만 한다. 흡연의 자유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사회가 대다수 사람들의 권리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시험지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느 때나 항상 세계의 모든 성인들의 8분의 1은 흡연가들이기 때문이다. (38)


아이가 즐겁고, 노인이 불만 없고, 여성이 편하며,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은 정도가 그 사회의 복지 수준을 볼 수 있는 지표가 되듯, 정권과 사회의 전제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게 흡연의 권리, 라고 한다면 좀 센가. 좀 세더라도. “담배가 싫어!”라고 말하는 당신들을 존중하면서도 나는 담배가 좋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신체조건이 될 순간이 다른 무엇보다 더 두려울 정도로.


저자가 담배를 완전히 끊고 나서 쓴 이 책은 ‘담배에 대한 송시(頌詩)이면서, 동시에 담배에 대한 비가(悲歌)이기도 하다.’(20-21) 몇몇 문학과 작가와 영화를 아우르며 담배를 논하는 일종의 문화사라고 할까. 밀도 높은 서문에 비해 뒤로 갈수록 약간은 지루하고 재미가 덜하다. 불문학과 명예교수 저자의 글임에도, 그리고 국내 첫 번역출간이 아닌 책임에도(1995년 문학세계사에서 출간), 불어와 불문학에 대한 번역의 무성의함이 아쉽다.


65쪽 ‘담배 주머니가 불어로는 우네부스unebourse(역주-불어로 ‘돈 지갑’ 또는 ‘지갑에 든 돈’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에서 unebourse는 une bourse (윈 부르스)의 띄어쓰기 오류인 것 같다. 관사와 명사를 하나의 단어로 오해한 듯.
110쪽 보들레르의 그 유명한 시 <correspondence>는 ‘일치’가 아니라 보통 ‘상응’(또는 ‘교감’)이라고 번역되지 않나.
264쪽 역시 유명한 롤랑 바르트의 사진 에세이 <La chambre claire>를 ‘불 켜진 방’으로 옮긴 것은 가장 부끄럽다. ‘밝은 방’ 내지는 구판본의 제목을 가져와도 ‘카메라 루시다’ 정도여야 하리라.


사르트르와 보들레르, 말라르메, 그리고 프랑스 담배 ‘지탄’에 그 모티브들을 준 메리메의 <카르멘>의 글귀와 시구가 간간이 언급되면서 흡연이 어떤 고차원적인 면모를 얻게 되기도 하고 담배가 감상적인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가 가장 큰 비중을 들여 소개하고 있는 ‘담배소설,’ <제노의 고백>(우리 번역본으로는 <제노의 의식>)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평생 담배를 끊으려는 시도를 하는 데에만 세월을 보내다 결국 노년기에 이르러서야 금연에 성공하게 되는 사람의 회고록’(7)이라는 이탈로 스베보의 소설이 내 보관함에 들어갔다.


담배? 무익하다. ‘부정적인 쾌락’이다. 아마도 그래서 쾌락주의자인 나의 ‘숭고한’ 친구다.


담배를 끊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있어서 너무나 황홀하게 아름다운 무언가를-아니 어떻게 보면 누군가를-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상실감에 서글퍼할 것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별에 대해서도 슬퍼할 것이다(역주-서양에서는 누군가 죽을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한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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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하늘여우 2015/05/11 18:27 # 답글

    차라리 솔직하게 난 담배가 몸에 나쁜걸 알지만 그래도 좋으니까 피우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네들이 세금에 기여합네 뭐네 하고 이상한 자부심 가지는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들어요.
  • 취한배 2015/05/12 18:43 #

    세금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흡연하는 사람을 저는 못 보았지만, 세금 걷어다가 엉뚱한 데 쓰는 현 정권에 세금을 주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딜레마라고 할까요. 아직도 담배를? ㅉㅉ...하지 않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은 거의 인간말짜 취급들이어서;;
  • 하늘여우 2015/05/12 18:47 #

    제가 담배를 매우 싫어하긴 하지만 저희 아버지도 담배를 피우시는 마당이셔서 말이죠... 킁;
  • 취한배 2015/05/12 19:03 #

    그러시군요. 건강하신 하나의 징표로 보셔도...? 흡- 킁, 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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