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한 사람을 가뿐히 범죄자로 만드는 무지막지한 언론, 경찰, 사법기관을 볼 수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인도 혈통의 영국인 사무변호사 조지 에들지에게 일어난 일이다. 바로 몇 년 전 프랑스에서는 드레퓌스 사건이 있었고 당시 그것을 바로 잡으려던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역할을 영국에서는 아서 코난 도일 경이 하고 있다. 누군가를 마녀로 만들기가 이토록 쉽다. 피부색이나 민족, 종교 또는 정치적 경향 등에 대한 편견이 똘똘 뭉치면 되는 일이다.
그들이 교묘히 몰아붙여 만드는 결과가 정의가 되고 마는 모습, 우리는 아주 많이 보아왔다. 금방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인혁당사건, 유서대필사건, 간첩조작사건, 정당해산심판 등등. 그렇다고 해서, 아니 어쩌면 그러므로, 한 세기 전 영국의 부조리한 재판이 더욱 무심히 읽히지가 않는다. 줄리언 반스의 차분한 듯, 느슨한 듯한 진행에 분노가 답답하게, 서서히 차오른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그에게 신문을 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그래서 그는 헤드라인으로 적힌 그의 인생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고, 그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이상 소문이 아니라 법적 사실로 규정되었음을, 그의 인격이 이제는 조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권 293)
한 축에 조지의 판결이 있고 다른 한 축에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전기가 있다. 억울한 사건이나 재판의 희생자에게 코난 도일 경이 자기의 명성을 잘 이용하여 구명과 기부금 모금활동을 해왔음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콩고주재 대사 로저 케이스먼트나 이 책에도 언급되는 조지 에들지와,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마라톤 선수에 대한 모금활동 등. 그리고 그의 결혼과 재혼에 얽힌 사연, 말년에 심취한 심령술까지 전기적으로도 세세하다.
진실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조지 사건의 진실이 그렇고 아서 코난 도일의 진면모가 그렇다. 37년 후 밝혀지는 진범과 코난 도일 경이 남긴 자서전을 읽는 조지의 감상이 아마도 가장 진실에 가까우리라. 원제가, 간결하고 인상적인 ‘아서와 조지’인데 다산책방의 번역제목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이후 이번에도)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용감한 친구들’이라니-_-; 띠지에 쓰인 문구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이야기!’는 아마도 모두가, 속 시원한 결말 또는 진실,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일 터, 내가 바로 그랬다.
법적인 순교자로서 그가 겪은 고통은 사법부의 진보를 가져다줄 것이다. (…) 그의 인생에서 겪었던 그 끔찍한 사건이 그가 몸담은 분야에 궁극적으로는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 법학의 역사에 주석으로 남는 것보다 훨씬 더 불행한 운명들도 분명 있으리라고 조지는 생각하기로 했다. (2권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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