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시티 NoSmoking

화이트 시티 - 8점
에릭 라슨 지음, 양은모 옮김/은행나무



1893 시카고 엑스포 페리스 휠 (출처 Wikipedia)


 

업튼 싱클레어 <정글>(채광석 옮김, 페이퍼로드, 2009)에서 봤던 시카고를 다시 만난다. 시기상으로는 <정글>보다 조금 앞선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의 준비와 진행과정. 그리고 동시기 끔찍한 연쇄살인마의 행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근차근 이야기된다. 전자의 중심인물은 건축가 대니얼 번햄, 후자의 주인공은 코난 도일의 인물 이름을 따 스스로를 홈즈라 호명했던 머제트다.


불과 몇 년 전 역사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파리 세계박람회(그렇다, 그 유명한 에펠탑을 선보인 바로 1889년 엑스포)를 능가하는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미국의 야심이 있었다. 도살장의 악취와 전염병, 석탄연기 등으로 거무스름하고 탁하고 매캐한 시카고가 개최도시로 선정되면서 번햄의 지휘 아래 기획되는 잭슨 파크의 화이트 시티.


미국의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조경건축가들의 건물과 식물들이 한 단 한 단 올라가면서 홈즈의 무시무시한 악행도 하나하나 진행된다. 화이트 시티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차차 완성되듯 홈즈의 음산한 ‘박람회 호텔’ 또한 차분히, 아마추어적으로, 그러나 치밀하게 지어진다. 한창 커가는 중인 도시의 혼돈 속에서 죽음과 피의 화신 홈즈는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사교술로 온갖 사기와 살해를 저지르면서도 번듯하게 살고 있다.


‘박람회의 즐거움 중 하나는 초콜릿으로 만든 밀로의 비너스나 영구차 전시장, 혹은 크루프의 괴물 포신(砲身) 아래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322) 역사적인 이 박람회에 물론 홈즈도 간다. 그리고 저자가 아주 짤막짤막하고 무심하게 흘리는 문단들이 삽화처럼 동시대 여러 인물들을 살아 있는 모습으로 만나게 해주는데 그 또한 의외의 기쁨이다. 익명으로 박람회장에 왔던 오스트리아 페르디난드 대공과, 시카고까지 왔으나 병이 나서 호텔에만 머무르다 화이트 시티를 보지 못한 채 떠난 마크 트웨인도 있고,


일리노이 맹아학교의 교장인 프랭크 헤이븐 홀은 점자책을 인쇄하는 장치를 처음 공개했다. (…) 홀이 그의 최신 기계 옆에 서 있을 때 한 맹인 소녀와 그녀의 안내인이 다가왔다.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타자기를 발명한 사람이 바로 거기 서 있는 홀이라는 것을 안 소녀는 두 팔로 그의 목을 껴안으며 키스했다. 그 후 오랫동안 홀은 그가 헬렌 켈러를 만난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곤 했다. (323)


영화 속 카메오 같은 이런 장면들이 나는 참 좋다. 젊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도 잠깐 만날 수 있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더 재미있게 볼 만하다. 그렇다고 심하게 전문적인 내용은 아니다. 엄청난 양의 자료를 조사한 게 느껴지면서도 수위조절을 하려고 애쓴 점이 역력하다. 같은 시ㆍ공간의 전혀 다른 두 인물, 또는 두 사건을 엎치락뒤치락 배열한 직조가 매력적이다. 


도시의 과시욕, 엑스포라는 환영, 박람회의 명과 암. 보여주기 위한 번드르르하고 깨끗한 과시물들이 나날이 하얗게 빛을 발하는 만큼 더 깊은 어둠 또한 공존함을 잊지 않는다. 홈즈라는 극단적인 사이코패스의 어둠 뿐 아니다. 건설현장에서 죽어간 숱한 노동자들, 박람회 이후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나앉게 되는 현상, 짧은 기회를 이용하여 한 몫 단단히 잡으려는 속물 등 19세기 말 시카고를 잘 느낄 수 있는, 에릭 라슨의 <화이트 시티>다. 업튼 싱클레어 <정글>로 이어지는 독서라면 물론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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