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Smoking

자화상 - 8점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은행나무


끊임없는 ‘나는’과 짧은 문장. 긍정문과 부정문의 교차. 오로지 자기 자신만 얘기하기. 파편들로 구성되는 에두아르 르베라는 사람을 만난다. 사진작가였고 글을 썼고 자살했다. ‘천재’라는 수식어는 왜 붙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사진작품들을 본 적은 없다. 누군가의 트위터 멘션들을 쫙 모아 틈 없이 이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했다. ‘나는’을 많이 쓰는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종 반복되는 ‘나는’은 어떤 묘미가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보다 백 배 좋다. ‘너는’을 여전히 더 좋아하지만. 이제 막 알게 된 사람이 이 세상에 없어 섭섭하다. 프레데리크 베그베데르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 중 알몸 에피소드를 (예외적으로 남자들로만 이루어짐. 밀짚모자 하나씩만이 유일한 소품. 진행자도, 작가도, 참가관객들도) 보았다고 언급한 것에서 내가 르베와 같은 시ㆍ공간에 있었던 단서를 찾아내어 더욱 그렇다. 죽기 열흘 전에 넘겼다고 하는 원고 <자살>이 궁금해진다.


나는 쾌락보다는 현실과 더 자주 직면하지만 쾌락원칙은 현실원칙보다 더 내 삶을 인도한다. 예술가와 작가로서 나는 나도 모르게 미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내 기벽을 자극하고 있고, 혼자 작업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못하니,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때로 그 사실을 알려주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때로 내가 하는 것이 예술인지, 단지 예술 치료인지 궁금하다. (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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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집에서 문득 본 진실 : 에르베 기베르 <천국> 2015-04-03 19:01:47 #

    ... 에르베 기베르Hervé Guibert를 떠올리게 된 건 얼마 전에 읽은 에두아르 르베의 &lt;자화상&gt;(은행나무, 2015)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유일한 번역본이자 절판본 &lt;천국&gt;(바리데기, 1994)을 조박사가 읽었다는 사실로 ... more

덧글

  • mu 2015/03/22 22:55 # 삭제 답글


    우리는 그 슬픔이 스무 가지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 걸 보지만, 결국은 다 똑같은 것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 David Foster Wallace

    월러스 infinite Jest(끝없는 농담)이 어서 출간되었으면 합니다. 자살한 사람의 유고작 베스트 10에 넣어주고 싶으니 말입니다.
  • 취한배 2015/03/23 01:42 #

    처음 보는 이름이라 검색해보고 <이것은 물이다>를 알게 됐습니다. 옮겨주신 문장만으로도 저서가 궁금해지네요. (조심스레-) mu 님의 '자살한 사람 유고작 베스트 10'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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