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Smoking

스토너 - 10점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존 윌리엄스라니. 동명의 미국 영화음악 작곡가가 어느 정도까지 인상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가장 ‘미국적인’ 이름을 하나 대라고 한다면 툭 뱉어낼 이름. 특색 없고 흔한 느낌의, 마치 서류 끝에 기입하는 서명 ‘X,’ 또는 ‘익명’과도 비슷한 무게, 미국을 의인화하는 ‘엉클 샘’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존 윌리엄스라니. 72년 인생에서 내놓은 4편의 소설. 그 중 ‘믿기 힘든 발견’(이언 매큐언), <스토너>가 왔다. 출간된 지 50년 만의 일이다.

한 사람의 평생은, 그것이 글로 쓰였을 때 ‘내가 이다지도 노력해서 이렇게 되었다’와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전자에서는 부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박수를 쳐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큰 감동이 오기도 할 터이고. 후자에서는? 그러니까, 그게 참 이상한데, 가슴 속 깊은 곳이 아려온다. <스토너>가 그랬다.

윌리엄(또!) 스토너. 영문학과 교수다. 첫 소개말로 아무 고민 없이 직업을 먼저 얘기하는 나만 보아도 한 사람이 살면서 매일 하는 ‘일’이 그 사람을 얘기하는 큰 부분임은 맞나 보다.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좀 비극적이지만, 확실히 스토너에게는 이 ‘일’이 바로 자기였다. 사랑에 빠지듯이 자연스럽게 문학과 책에 빠졌고 이러구러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


문학, 언어, 정밀하고 기묘하며 뜻밖의 조합을 이룬 글 속에서 그 무엇보다 검고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자를 통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그는 마치 위험하고 부정한 것을 숨기듯 숨겨왔지만, 이제는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가 대담하게, 종내는 자랑스럽게. (159)



미주리 대학, 제시 홀  (출처 AdamProcter, Wikipedia)


‘사랑에 빠지듯이’라고 해버렸는데, 옳거니. 연애, 사랑도 있다. 이번 경우에는 문학에 빠지듯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빠졌다고 해야 할까. 일과 사랑. 거기에 더해 내게 스토너를 가장 스토너답게 해준 뭔가가 있다면 홀랜드(홀리) 로맥스와의 불화(不和)다. 노력했지만 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 억지로 만들 수 없는 화해. 적어도 스토너는 비겁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거짓말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천사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식한 개자식일 수도 있는 법이다.


그(스토너)는 로맥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홀리, 이미 오랫동안 자네와 알고 지낸 만큼 자네가 나를 나름대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네. 나는 자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나 내게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조금도 신경을 써본 적이 없어. 전혀. (…)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세. 그건 한 번도 중요했던 적이 없어. 난 자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물론, 좋은 교수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 자네는 무식한 개자식일세.” (359)


공부, 일, 사랑, 불화, 친구, 딸... 스토너의 삶이 이랬다. 인생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으리라 상상하는 건 중년이 아직 되지 않은 사람들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아니 다르게 말하자면 공부, 일, 사랑, 불화, 친구, 딸이 이미 대단한 무엇들이라 할 수 있겠다. 원한 적 없는데 태어난다. 이런 저런 선택들을 하며 공부, 일, 사랑, 불화, 친구, 딸을 겪고 이제 조금 살았나? 싶을 때 우리는 삶의 끝에 와 있게 된다.

‘내가 이다지도 노력해서 이렇게 되었다’와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가 평평해지는 순간이다. 죽음 말이다. 돌이켜보면 순간순간의 ‘어찌어찌’들이 최선을 다한 노력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권태와 무관심’(322)으로 보이지만 마음 깊이 원했던 것을 결국 이룬 딸과 스토너 자신을 보면 그렇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여기 이렇게 있다. 여기 이렇게 있기 위해 나는 전 우주와 싸웠다. 이 두 문장은 다르지 않아진다. 

억지로 봉합하지 않는다. 거짓으로 화해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알고 보면 최선을 다했다. 소멸해가는 순간에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390) 가슴 아래께 서서히 차오르는 뻐근함과 아릿한 여운은 어디에서 오는가. 스토너가 나 같아서, 우리 같아서? ‘존 윌리엄스’라는 특색 없는 딱 그 이름처럼. 아마도.

이상하게 이 문장이 참 좋았다.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이곳이 자기 연구실임을 깨달았다. 책꽂이들은 되는 대로 꽂아둔 책들로 터질 지경이었고, 귀퉁이에는 여러 개의 종이 더미가 있었다. 서류함은 열린 채 헝클어진 상태였다. 정리를 좀 해야겠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물건들을 정돈해야겠어.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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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다락방 2015/02/06 10:09 # 삭제 답글

    이 책은 읽기도 전에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보다 앞서 측근님이 읽고 이렇듯 글을 써주시니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조용한 소설일 것 같습니다, 측근님.
  • 취한배 2015/02/06 22:02 #

    읽기도 전에 좋아할 것 같다하시니, 감동.ㅜㅜ 사실은 저도 이런 적이 없는데 이 책은 읽기 전부터 좋아했던 것 같아요. 좋은 리뷰들이 (꼼꼼히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유독 많아서 그랬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제게도 좋았어요, 네, 조용하고요. (이 답을 하면서도 좀 울컥.)
  • 2015/02/11 11: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1 12: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2/11 13: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3/05 09: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3/05 12: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3/05 15: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3/05 18:2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다락방 2015/04/20 16:24 # 삭제 답글

    이 책을 다 읽고 이 글을 다시 읽으러 왔어요.
    역시 읽기전의 리뷰와 읽고난 후의 리뷰는 달라요.
    지금은 측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주 잘 알겠어요.
    :)
  • 취한배 2015/04/20 21:46 #

    다락방 님 드디어 읽으셨군요. 멋진 이 책!
    ㅎㅎ그죠 독서 전과 후 리뷰가 다르게 다가와요. (제가 친절하게 글을 쓰지도 못하고요.ㅜㅜ)
    멋진 책 이제 다락방 님과 공유하니 좋고, 제 글 다시 읽으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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