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속도 술이깰때까지자시오


여행의 속도 - 8점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글담(아날로그)

 

이동 수단과 여행. 속도별로 장을 구분해 고속열차, 기차, 자동차, 트램, 배, 걷기 등으로 여행지를 소개한다. 저자가 건축학자인만큼 건축물 얘기가 많아 흥미롭다. 장소는 스페인, 프랑스, 일본, 미국 등. 이번 주문에 이 책을 넣은 이유는 무엇보다 마지막 장인 속도 0, ‘묘지여행’ 때문이었다. 그것도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



 

묘지에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생명의 종착점이다. 그들의 여행은 이미 끝났으며, 그렇기에 그들의 여행 속도는 ‘0’이다. 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에게도 이곳은 내면의 불타오르던 욕망을 잠시 식힐 수 있는 곳이다. 여행의 속도는 점점 낮아질 것이고, 결국은 조용히 멈추어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54)


내 경우 파리에서 술집과 미술관 다음으로 산책을 많이 한 장소가 페르라셰즈다. 촉촉하게 비가 내린 회색 날이나 쌀쌀한 바람이 불던 11월. 거기보다 나를 더 잘 받아주던 곳이 있었을까(물론 술집 다음으로 말이지만). 산책에서 간혹 마주치던 살아 있는 사람보다 쇼팽, 짐 모리슨, 오스카 와일드가 더 친근하게 여겨지던 걸음걸음들. 내 이십대. 향수를 충분히 포용해주는 분위기의 글쓰기는 아니지만 이 장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마웠다. 종일 눈은 내리지 않고 울먹울먹하는 하늘이 퍽 잿빛이었다, 오늘은 서울도.








P.S. 참, 58쪽.『립 밴 윙클』은 존 어빙이 아니라 워싱턴 어빙의 작품이다. 저자가 착각한 듯.



 


덧글

  • Q.E. 2015/01/14 22:34 # 삭제 답글

    술집 다음으로 페르라셰즈에 많이 안겨 계셨다니 왠지 쓸쓸한 이야기네요.
    하니, '으슬으슬' 한기가 도는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울먹울먹하는 하늘'일 수도 있었겠어요.
    서울에서 복닥거리며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낸 이에게는 그저 짐작뿐인 그림이지만요.
  • 취한배 2015/01/14 23:19 #

    쓸쓸하게 느끼셨습니까?;; 전 좋아서 한 일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꼼꼼하게 읽어주시니 아주 많이 부끄러워집니다.
    서울에서 복닥거리는 학창시절은 저도... 아주 옛날에.ㅎㅎ 파리에서 논 기억밖에 없어서 또 부끄럽네요. 선곡도 마음에 안 들고. 더 우울한 짐 모리슨을 들어야겠어요. Q.E 님.
  • 달을향한사다리 2015/01/15 14:27 # 답글

    아아, 이 책 좋을 거 같아요! 천편일률적인 여행기는 아닐 듯... 전 파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가게 되면 꼭 흐린 날 페르라셰즈를 방문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어요. 되도록이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 2015/01/15 16: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1/16 16: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다락방 2015/01/16 08:47 # 삭제 답글

    측근님의 오른손 엄지손가락!
    :)
  • 취한배 2015/01/16 15:26 #

    노출 감행! 예쁘지요, 제 엄지손가락? 희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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