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테러 Smoking

마오 Ⅱ - 8점
돈 드릴로 지음, 유정완 옮김/창비


“지금껏 나는 소설가들과 테러리스트들이 일종의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소.”
“흥미롭군요. 어떻게 그렇지요?”
“테러리스트가 얻는 걸 소설가들은 잃으니까. 대중의 의식에 그들이 영향을 미치는 크기는 감성과 사상의 형성자로서 우리가 쇠락하는 정도와 같으니까. 그들이 대변하는 위협은 우리가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위협의 크기와 일치한다는 말이오.” (239)


폭력을 사용하여 상대편을 위협하고 공포에 빠뜨리는 행위(테러)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인간 활동(예술) 사이. 놀랍지만 공통분모가 있다. 자기표현이랄지 의사나 의지 표명이랄지, 더구나 현대사회에서는 미디어라는 장치의 힘을 안다는 것까지. 예술의 사전적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큰 의미가 없어진 점을 보자면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테러 집단에 납치당한 젊은 시인을 어쩌면 저명한 소설가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 단순화하자면 폭력을 이길 수 있는 예술, 제로섬 게임에서 큰 양수(+)를 차지하는 예술이 가능할까, 하는 질문을 <마오 II>에서 읽었다.


현재사회에서 이 게임은 어쩌면 미디어에 달려 있다. 자신들의 요구를 더 없이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해 인터넷에 올리는 처형 장면들. 영상 또는 언론보도 없이는 참수도, 석방도 없는 테러. 대량복제, 배포되는 이미지로써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을 제로섬 게임에 불러들여 전면에 내세운 돈 드릴로가 십분 이해되는 지점이다. 복제되는 이미지 예술의 자격으로 사진과 카메라를 배치한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폭력과 예술의 아슬아슬한 경계.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사람들과 총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빌은 그 둘 사이에 미미한 차이도 발견할 수 없었다.’(297-298). 이 게임의 룰을 아는 이들은 그래서 미디어를 통제한다.


“현재 모든 폐쇄국가의 핵심은 당신도 알듯이 죽은 자들을 어떻게 감추느냐 하는 문제요. 이건 확고한 거요. 진리에 대한 당신의 입장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당신들은 많은 죽음이 뒤따르리란 걸 예상할 수 있소. 그러면 죽이겠지. 그러고는 죽였다는 사실과 시체들을 감출 것이고. 이게 바로 폐쇄국가가 만들어진 이유요. 그리고 그건 인질 한 명에서 출발하는 거지, 그렇지 않소? 인질은 그 축소판인 셈이라고. 집단적 공포를 위한 최초의 예행연습이란 말이오.” (249-250)


종교에 경도된 광신자 캐런,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이는 묘한 집착의 소유자 스콧, 23년 간 ‘구두점을 수정하는 중’(194)인 소설가 빌, 사진가 브리타. 이들의 이상하고 쓸쓸하고 조금은 무서운 4중주. 각자이다가 서로 교차하고 모두 모였다가 다시 흩어져 따로 또 같이 제 삶을 산다. 묵직한 여운. 그래서 아름다움이, 아니 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 긴 은둔을 깨고 카메라 앞에 섰던 소설가는 어쩌면 정말 총 앞에 섰던 건지도 모르고 아직 ‘민주적인 죽음’을 맞지도 못했다. 다만 어느 고요한 밤 베이루트의 마그네슘 조명으로 인한 잠깐의 화이트아웃이 그나마 약간의 희망이라면, 희망일지도.


주요 검문소 근처 어둠속에 불빛이 번쩍인다. 그리고 똑같은 곳에서 또 한 차례 더, 몇 번 더, 강렬하고 새하얗게 불이 번쩍인다. 그녀는 보복 불빛, 대응사격을 기다리지만 불빛은 한곳에서만 번쩍이고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늘 쏘아댈 자동화기 교환 발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당연히 한가지뿐이다. 저쪽에 누군가 카메라와 조명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브리타는 한참 더 발코니에 서서 필름에 이미지를 새기고 있는 마그네슘 파장을 바라본다. 그녀는 추워서 두 팔로 몸을 감싸며 그 불굴의 불빛이 터지는 숫자를 센다. 죽은 도시가 다시 한번 사진에 찍히고 있다.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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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ㅂ.ㄷ. 2015/01/08 20:26 # 삭제 답글

    그렇죠! 이것입니다. 왠지 간질간질한데 힘이 달려 긁지 못했던 부분이 이제야 좀 더 명료하게 도드라지는 기분이네요. (흠. 쓰고 보니 지저분한 비유. 죄송 -,.-;;;) 아무튼. 폭력(테러)과 예술이라는 대립항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벌렸다 하면서 그 맥락을 풀어내는 통찰력에 감탄했던 작품이었어요.
  • 취한배 2015/01/09 01:59 #

    읍. 그 부분을 긁어드렸다면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으쓱으쓱. ㅂ.ㄷ 님에게서도 ‘긁음’을 당한 입장에서 뭔가 무척 뿌듯. 그죠, 대립항이라시니, 이 작품은 그것의 '거의 모든 것'이었던 것 같아요. 예술-폭력, 민주주의-전체주의, 사진-무기, 개인-군중, 진실-미디어,,, 제3세계-미국 만 빼고 말이지요. 좋은 작품은 이렇게 여러 말들을 나누고 무릎을 치고 소통하게 하는 모양이에요.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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