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레 파베세, 알라딘 다이어리 NoSmoking


 

멋진 표지 때문에 꼭 자랑하고 싶은 책들이 왔다. 문학동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중 체사레 파베세다. 작가 얼굴을 표지로 한 인문서가 시리즈는 모두 멋있는데, 따끈한 신간이니 얼른 만져보고 싶어 새벽에 주문했다.


 

페렉과 타부키 시리즈가 하드커버였던 데 반해 이것은 그렇지 않은데, 그냥 감수한다. 이대로도 멋있으니까. <레우코와의 대화>(열린책들, 2010)에서 영원한 잠에 드는 엔디미온의 운명과 겹쳐 보여 더 가슴 아프게 만났던 파베세. 그리고 <거대한 고독>(프레데릭 파작, 현대문학, 2006)에서 파작이 생생하게 보여준 토리노에서의 마지막 순간의 파베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미학, 잘난 척, 천재성, 그리고 온갖 비겁한 짓을 빼고 나면 내가 바보 같은 짓이 아닌 것을 한 적이 있었던가?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았고 허황되고 실제로 하지도 못하면서도 자살이란 생각만으로 버티는 사람, 살 줄 모르는 사람이 저지르는 가장 평범한 의미에서, 가장 치유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의 바보짓.” (<거대한 고독>)


이라는 슬픈 문장만으로 기억할 뻔했던 시인의 작품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외관으로 재출간되어 기쁘다. <삶이라는 직업>을 대표작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건 나오지 않을 예정인지 근작 언급이 없다. 내 기억에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에서 진 세버그가 침대에서 보고 있던 책이 파베세였던 것 같은데, 확인할 방법이... (영화를 다시 보면 되겠구나.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되면 내용을 수정하겠다.) 그러던 차에 이런 동영상을 발견.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
죽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도 자지 않고 귀머거리처럼
우리와 함께 있다. 오래된 후회나
불합리한 악습처럼. 당신의 눈은
공허한 말, 소리 없는 함성,
침묵이 될 것이다.
당신 혼자 거울을 향해
몸을 숙일 때 매일 아침 당신은
그것들을 본다. 오, 사랑스런 희망이여,
그날 우리도 알게 되겠지.
당신은 삶이, 당신이 죽음이라는 것을.

죽음은 모두를 바라보고 있다.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
악습을 끊는 것 같겠지.
거울 속에서 죽은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것 같겠지.
닫힌 입술에 귀 기울이는 것 같겠지.
우리는 말없이 소용돌이 안으로 내려가겠지.

(<냉담의 시> 108)


 

파베세의 시와 레오 페레의 음악을 누군가 이 영화 장면에 입혀놓은 걸 보면, 내 엉망인 기억이 틀리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파베세가 생애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심정이 말년의 시 모음이자 사후 즉시 출간된 <죽음이 다가와 당신의 눈을 가져가리>에 담겨 있다. 이 책 <냉담의 시>에서는 마지막 챕터를 이루는데 그 챕터의 끝 시가 이렇다.



마지막 블루스, 언젠가 읽게 될


그건 가벼운 사랑일 뿐이었어.
당신은 분명히 알고 있었지-
오래전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었다.

모든 것은 똑같다.
시간은 흘렀다-
언젠가 당신은 왔고
언젠가 당신은 죽겠지.

누군가는 죽었다.
오래전에-
노력했지만
알지 못했던 누군가는.

(<냉담의 시> 118)

                                                                                                                            
                                                                                                                          




이번 주문에 깔맞춤한 다이어리는 까만 위클리. 이건 내가 쓸 거라 개봉. 살짝 폭신한 듯, 패브릭 느낌에 먼지도 잘- 들러붙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든다.



비 오고, 냉장고에는 맥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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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다락방 2014/12/10 23:20 # 삭제 답글

    측근님 측근님 저 술 취했어요.
    뭔가 엄청 길게 쓰다 지우다 했어요. 측근님 멋지다 결국 이런 말인데 취하니까 자꾸 살붙어서 이상해져요. 이성을 단단히 붙들어매야해요. 저 주책이죠? ㅜㅜ

    이런 근사한 글에 오만년 걸려 고작 이런 댓글 ㅠㅠ
  • 취한배 2014/12/11 00:33 #

    아이고, 이게 얼마만입니까, 꽐라다락슨생님-
    ㅜㅜ엄청 길게 쓴 덧글 못 봐 오히려 아쉬운 밤입니다요. 밖은 축축하고 찬데 얼굴은 뜨끈하게 취기가 올라 너무 좋아요.
    오만 년 걸렸다니 미안해집니다! 내일 아침, 삭제하고 싶어지실지도 모르니 얼른 답글로 인증.
    굿나잇- 꽐라측근님.
  • Fuked up 2014/12/11 10:05 # 삭제 답글

    네 접니다
    에프로 시작할때부터 알았겠지만.

    어쩌면 죽음은 아픔의 도피처 아닌감요.. 아무리 아파도 죽을거 생각하면 덜아파 지니까
  • 취한배 2014/12/11 13:10 #

    앗 깜짝. 꽐라슨생2 님! 스팸글인줄 알고 삭제할 뻔;;
    파베세가 한 말과 통하네요. 아픔의 도피처가 죽음일 수도 있지만 에프 님께는 '사랑'을 처방해드리고 싶어요. 사랑- 덜 아파지세욤.^^
  • 달을향한사다리 2014/12/17 23:55 # 답글

    저도 알라딘 다이어리 위클리! 근데 전 보라색을 선택했어요 ㅋㅋㅋ 전 남색이랑 보라 중에서 고민했었는데 보니까 검정도 예쁘네요^^
  • 취한배 2014/12/19 00:40 #

    데일리는 너무 커서 저도 위클리! 전 보라위클리는 보라색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에게 선물했어요. 사다리 님도 보라! 저는 칙칙한 사람이라 검정-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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