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소텔 이야기 Smoking


에드거 소텔 이야기 1 - 8점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광고문구에 ‘햄릿’이라는 말이 언급된 것으로 스포일링은 이미 완료되었다. 다만 900여 쪽에 이르는 작품이 그 뼈대에다 살을 어떻게 붙이고 있는지를 보는 게 재미이자 기대일 터. 특히 이 책에서는 개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거짓)말하고 어리석고 배반하는 인간들에게서 보지 못할, 할딱이고 킁킁대고 핥는 따뜻한 털북숭이, 촉촉한 코로 연출되는 찡한 감동이 있다.


앨먼딘은 코를 에드거의 팔과 다리에 지그시 누르며 에드거가 집 밖으로 나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고 냄새를 맡았다. 앨먼딘의 눈이 빛났다. 앨먼딘은 에드거의 얼굴을 탐색했다.
(1권 376)


<햄릿>에 대입하여 인물 대응을 해보자면, 이름부터 노골적으로 따온 엄마와 삼촌이 있고, 닥터 파피노가 폴로니어스, 글렌 파피노가 레어티즈 정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앨먼딘은 아무리 보아도 오필리어 밖에 배역이 없는데, 저 사랑스러운 앨먼딘은... 그렇다, 개다. 햄릿의 친구와 부하들은 에드거의 개들이고 삼촌의 살인의혹을 넌지시 제기하는 그 유명한 연극 또한 강아지들이 재연한다. 귀엽고 웃기면서도 이상한 페이소스가 흐른다.

<햄릿>에 대한 조소로 여겨 웃어야할지, 아니면 되풀이되는 복수와 파멸에 심각해져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조금 망설여지는 게 여운이라면 여운일까. <햄릿>의 변주, 그러니까 에드거와 클로드(삼촌)의 운명 뿐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트루디(엄마)의 답답한 처신까지도 <햄릿>이 좋은 방패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책의 ‘선택과 운명’은 어찌 보면 조금은 아쉽고 맥 빠지게 철저히 <햄릿>이다. 


피할 수 없는 의무 중에서 선택할 수가 없었다. 부활할 것인가 복수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돌아설 것인가. (2권 431)


뼈대에 덧붙여진 아름다운 ‘살’에 대해 보자면, 아버지 유령 장면에서 더 나아가 에드거는 먼 과거의 인물과 공명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미래를 보는 노파의 수수께끼 같은 말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한동안 길을 떠나 훌쩍 커서 돌아오는 성장의례도 무척 험난한 동시에 따뜻해서, 작품을 통틀어 내게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남게 되는 헨리가 그 과정에 등장한다. ‘평범함’이라는 말에 트라우마가 있는 이 사람과의 한 일화, 에드거와 개들을 차에 데리고 드라이브 하던 중이다.


옆에 선 차에는 젊은 여자가 타고 있었다.
에드거가 헨리의 팔을 톡톡 치며 옆 차를 가리켰다.
“맙소사.” 헨리가 말했다. “벨바야. 자연스럽게 행동해.”
에드거는 헨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에드거는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개들도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런데 헨리는 당장에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 헨리는 딱딱하게 굳어진 채 긴장의 표시가 역력한 휘파람을 투투툿 불면서 마치 라디오에서 로큰롤이라도 나오는 듯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실은 일기 예보였다. 오늘은 일부 구름이 끼겠고, 내일은 천둥번개를 동반하는 심한 폭우가 예상됩니다. (2권 245)


개들과의 접촉이 낯설고 어수룩한 헨리가 그들과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하는 장면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의 한 문장을 제사로 취하고 <햄릿>을 얼개로 갖고 있는 이상한 ‘잡종’ 같은 이 소설. 개와의 교감과, 차고 넘치는 자연묘사, 목소리 없이 기록과 문자의 힘을 보여주는 소년 이야기. 다음 작품이 그 누구보다 궁금해지는 로블레스키다. 사전을 뒤져 고심 끝에 개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에드거처럼 ‘소텔’을 다시 쳐다본다. Sawtelle. ‘말하는 것을 본’ 사람 정도 되려나. 목소리가 없는 햄릿이 본 진실은, 이제 모두 알지만 아직도 이토록 매혹적일 수 있다.


별안간 클로드의 확신이 흔들렸다. 생각을 분명히 할 수 없었다. 통하지 않을 것이다. 개 한 마리의 시선에 손이 떨리고 머릿속에서 피가 박동을 친다면. 그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클로드는 그렇게 가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봐야 하는 것이다. (2권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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