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Smoking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 8점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장정일 해설/이상북스

 

나는 내가 이 책을 읽은 줄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젊었을 때 예전 버전으로 정말 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완전히 다른 책으로, 더 정확히는 완전히 다른 내가 만난 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텅 비고 허무한 젊음, 휘청대고 소진하고 그러면서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을 느끼기에, 젊은 나는 너무 ‘충만’했다. 다시 말해 그 시절의 결핍감을 당시에는 결핍이라고 이름 붙여주지 못한 채, 취하고 낭비하고 섹스하고 휩쓸리고 사랑하고 집착했다. 결핍감이라는 말. 게일 캘드웰이 『먼 길로 돌아갈까?』(정은문고, 2013, 이승민 옮김)에서 ‘가슴 속 빈방’이라고 한 중독의 본질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서는 오키나와가 ‘부족한 뭔가’라고 부른다.


난 그냥 중독자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 헤로인도 떨어져 너무 너무 맞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 말이야, 그걸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사람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런 때 생각한 게 있어. 뭐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아니 나랑 헤로인 사이에, 뭔가가 있어도 되지 않느냐는 느낌이 드는 거야. 정말 몸이 달달 떨리고 미쳐버릴 만큼 헤로인을 맞고 싶긴 하지만 나와 헤로인만으로는 뭔가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 (148)


환각과 섬망 장면들, 마약에 절고 술에 취하며 쾌락을 좇고 탕진한다. 거창하지 않다. 그저 몸을 쓰고 쓴다. 체액이 흐르고 음식은 썩었고 벌레들이 출몰한다. ‘한없이’ 슬픈 불쾌감. 술 없이 취하는 추체험.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희미하게 희망의 결말이 그려진다. 꼭 그렇지 않아도 좋았겠지만.
몇몇 단어들이 내게 그러한데, 결핍이라는 말도 명명만으로 그 빈 곳이 조금은 채워지는 듯 위안이 된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무라카미 류, 이상북스의 <무라카미 류 셀렉션>이 내 손에 들어온 오늘, 놀랍게도 술 없이 읽었다. 무라카미 류가 24세에 쓴 ‘길 잃은 젊음.’ 아프니까 청춘? 결핍이어서 아팠다. 그리고 내 결핍감은 결핍이라는 말과 만나 위무가 된다.




덧글

  • 다락방 2014/11/17 00:45 # 삭제 답글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십대 중반이었나 이 책을 읽다가 바퀴벌레 구절을 친구들에게 술자리에서 읽어주고 야유를 받았더랬어요. 바퀴벌레를 죽이면 보라색 피가 나올거라고 했던가.....

    오늘 측근님께 땡투하고 책을 구매했는데 두 권다 측근님으로부터는 별 셋.... 하하하하핫
  • 취한배 2014/11/17 12:37 #

    오- 그 장면을 기억하시네요. (낭독 덕이겠지요?ㅋㅋ 그 술자리 정말 재미있었겠어요.ㅎㅎ) 본가에 구판이 있음을 아는데, 20대에 읽었는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다능; 제 3별 중 다락방 님 장바구니에 들 만한 것으로는 눈에대한백과사전과 올어바웃러브가 있네요하하흐흐흙흙- 저는 오늘 머리 깨짐요OTL... 다락방 님 땡큐ㅜㅜ
  • 다락방 2014/11/17 14:16 # 삭제

    앗!! 그 두 책이에요. 정확합니다, 측근님!
    아아~ 역시 괜히 측근인게 아니에요. 그쵸?

    점심이 지났는데, 여전히 머리가 깨지나요? 깨지지마요 ㅠㅠ
  • 취한배 2014/11/17 19:11 #

    만점입니까?! 측근자격갱신+자랑스러움.ㅎ
    깨지지마요.ㅋㅋㅋㅋ 최근 들은 말 중 가장 웃기고 따뜻ㅜㅜ!!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고맙습니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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