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슈만 NoSmoking

슈만, 내면의 풍경 - 10점
미셸 슈나이더 지음, 김남주 옮김/그책



 

음악을 언어로 ‘번역’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글쓰기가 있다면 미셸 슈나이더일 것이다. 글렌 굴드의 연주를 글로 옮긴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동문선, 이창실 옮김, 2002) 이후 로베르트 슈만이다. 슈만은 듣기에도, 연주하기에도(‘슈만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거의 신체적인 고통을 느낀다.’(70)) 쉽지 않은 음악임을 알고 있다. 망설이고 멈칫하고 유치해지는가 하면 멀어지다가 끝내 터뜨리지 못하는 그 음악들이 내게는 좀 아팠기에, 알고 싶었다. 읽었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모든 고통을 침묵시키는 것’이었지만 슈만의 경우는 다르다. 음악은 고통을 잡아두지도, 위로해주지도 않는다. 음악은 고통의 극단이다. “이 마지막 시간, 나는 더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칼로 내 신경을 자르는 것 같다.” (49)


앞서 얘기한대로 슈나이더의 글쓰기는 해제를 약간 곁들인 슈만 번역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슈만 읽기’가 ‘슈만 듣기’ 만큼이나 까다롭다. 다만 흘러가버려 잔음만 남는 음악을 포착하여 초점이 전체에 머무는 선명한 사진으로 우리에게 내미는 글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횔덜린의 시구를 매개로 전개하는 흐름이 멋있고 문장은 아름답다. 해당 시가 이렇다.


우리는 하나의 징후다, 더는 아무 의미도
더는 아무 고뇌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는
거의 잃어버렸다
낯선 땅에서 언어를.

-횔덜린,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저기에서 슈만의 핵심인 고통, 상실, 단어를 이용한 장난(작곡), 언어로 덧붙이는 연주지침, 낯섦과 멂 등을 짚어낸다. 특히 고통(douleur)과 고뇌(souffrance)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슈만의 것은 고뇌가 아닌 고통이라는 점을 드러내는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게 고통이라는 설명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왔다. 정말 그런가보다, 고뇌와 다르게 고통이라는 것은.


고통은 남과 소통할 수도, 남에게 드러내 보일 수도 없다. 고통에게는 탄식이나 한탄이 낯설다. 아마도 고통은 곧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이든 자기 자신이든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그 무엇일 것이다. 심지어는 의미와 무의미의 대조에도 못 미치는, 우리가 의미를 완전히 상실할 때 도달하는 상태일 것이다. (50)


‘고통이 물리적인 것 이상이거나 추상적인 데 반해, 고뇌는 도덕적이거나 심리적인 문제다.’(50) 그러니까 자식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순수한 ‘고통’ 그 자체이며 그 고통의 울부짖음을 듣지 않고 외면하는 이상한 정부를 갖게 된 사실은 ‘고뇌’할 부분인 것이다.

고통-고뇌처럼 짝을 이루어 설명되어야 할 슈만의 또 다른 키워드는 독일어 단어 ‘후모어Humor’다. ‘유머’와 ‘기분’이라는 뜻을 다 가졌고 『유모레스크』(1839)에서는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슈만이 덧붙이는 연주지침을 보면 비극적인 악절에도 이 단어가 쓰인다. ‘작품을 역설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균일하게 어두운 ‘기분’ 속에 잠기게 연주하라는’(121) 뜻이라니, ‘유머’로만 한정해서 생각하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되리라. 이렇게 쌍을 이루는 양식은 슈만이 사용한 두 가지 필명을 봐도 드러난다.


이런 가명의 사용(오이제비우스의 E와 플로레스탄의 F)은 ‘두 동료’의 성격이 서로 상반된다는 점에서 기질적이고, 각 이니셜을 통해 조성(E=미, F=파)에 대한 취향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유머러스하다.
슈만의 이 두 분신은 되풀이되는 두 가지 감정, 곧 슬픔과 쾌활함(심리학적 용어로 울증과 조증)이 의인화된 것이다. 하나는 밤의 경계에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낮의 나라에 산다. (122)


1854년 인생의 마지막 작곡이 될 ‘내면의 소리’를 받아 적은 후 라인 강에 몸을 던진 슈만의 일화부터 시작한 슈나이더는, 표제어로 삼은 횔덜린의 시구에 상응하는 글로 슈만의 작품들을 번역하고 다시 그날로 돌아와 글을 맺는다. 음악과 글이라는 명백히 다른 매체가 남기는 감흥이 희한하게 닮았다. 슈나이더의 놀라운 면모다. 읽었으니 듣는다.


음악은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혹은 원하는 때에 끝나지도, 시작되지도 않는다. 음악은 방어막 뒤에, 이중으로 된 최후의 빗장 너머에 있다. 음악은 감지할 수 있고 무게를 갖는다. 하나의 몸처럼 부정할 수 없고, 사랑처럼 저항이 불가능하다. 또한 어리석고, 유년처럼 나약하며, 우리 몸에 구멍을 내는 질병처럼 완강하다. 하지만 음악은 충실하다, 죽음처럼. (167-168)







내 고통, 당신의 죽음. 당신이 묻히러 간 2014년 10월 마지막 날. 슈만과 같은 ‘향년 46세’를 새로이, 영원히 가지게 된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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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집에서 문득 본 진실 : 금테 안경 2016-07-16 18:31:34 #

    ... 일지도 모르겠는데, 조용한 작품을 내가 좋아하는 모양이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슈만 같은. 울분이랄지 분노랄지 정의감 같은 것을 확 터뜨리지 않고 간직하는 느낌. 미셸 슈나이더는 ‘고통’이라고 했던.순간적인 방심으로 그는 큰 대가를 치른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조롱이었던 것 같다. (45)난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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